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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공사비는 약 5 만 원정도 덜 든다고 하였다 . 그리하여 오늘날의 경부선 수원 지역 통과 노 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 13 ) 그러나 일본회사는 노선변경으로 명학동에서 사그내까지 약 2 마일의 기정공사 폐기에 따른 손해금 13 , 503 원 95 전을 1903 년 10 월에 배상할 것을 청구하기도 하였다 . 14 ) 1 ) 수원역사 ( 水原驛舍 ) 의 변천 경부선의 개통은 한반도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발전과 상품 유통의 대동맥 구실을 하였 다 . 1905 년에 개통된 경부선에서 옛 수원지역을 관통하는 철도역은 수원역 , 오산역 , 병점 역이 있었는데 이글에서는 수원역사의 변천과 물동량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수원역은 수원시 권선구 매산로 1 가 18 번지 서울기점 41 . 5 ㎞ 지점에 위치한 경부선상의 중요한 역으로 1930 - 40 년대에는 경동철도의 수인선과 수여선의 시종착역이었다 . 1905 년 1 월 1 일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 , 1930 년 12 월 1 일 73 . 4 ㎞의 수여선 ( 수원 - 여주 ), 1937 년 8 월 6 일에는 52 ㎞의 수인선 ( 수원 - 남인천 ) 의 개통을 보게 되었다 . 수원역이 현 위치에 자리 잡은 이유는 다음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정거장은 수원군청 소재지의 안에 있고 , 부근이 황량하지만 기름진 들판이 있어 농산 물이 풍부하고 , 시장이 2 개 있어 물산의 집산지로서 상업 또한 성하다 . 정거장의 북쪽 20 여정 거리에 돌산이 있고 양호한 석재의 산지가 있으며 , 부근에 동척 ( 東拓 ), 동산 ( 東山 ), 국무 ( 國武 ) 세 농장이 있고 , 시가지는 정거장의 동쪽 15 정 거리에 있으며 , 성내에는 두루 13 ) 1908 년 최남선이 지은 ‘경부철도가’에는 수원지역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 ( 전략 ) 실라같은 안양을 옆에끼고서 / 다달으니 수원역 여기로다 / 예전에는 留守도 지금 觀察府 / 경기도의 관 찰사 있는 곳이다 . // 景槪이름 다좋고 西湖杭眉亭 / 그옆에는 農學校 農事試驗場 / 마음으로 華寧殿 謄拜한후 에 / 大聖人의 큰 孝誠 感泣하도다 . // 달바라는 螺閣은 어찌되었나 / 물구경터 華虹門 變이없는지 / 雲談風輕 때맞춰 訪花隨柳亭 / 登魚賞蓮 겸하는 萬石渠로다 . // 光敎山을 옆하고 떠나나가서 / 잠시간에 병점역 이르렀도 다 / 북에 뵈는 솔밭은 隆陵뫼신도 / 이름높은 大皇橋 거기있다오 .( 후략 ) 14 ) 조선총독부 , 『조선철도사』 , 1937 , 291 ~ 298 쪽 참조 . 이창식의 『수원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2004 ) 159쪽에는 손해 배상을 단호히 거절했다고 하나 , 손해배상금을 한국정부가 지불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