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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때 더욱 의미 있는 표현이다 . 수원을 상무적 전통이 강한 고을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 이를 증명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옛 수원지역이었던 평택시 안중 포승 앞 바다에 해군 2 함 대 사령부가 자리하고 , 발안에 해병대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는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이다 . 동시에 수원 · 오산 · 화성 지역에는 군장성이 유독 많은 까닭도 수원이 갖는 군사 지리적 유효성과 상무전통이 유난히 강한 역사적 맥락에 닿아 있다 . 3 . 수원 , 경기도 수부도시가 되다 . 조선시대 수원의 역사는 양주와 광주를 제치고 경기도의 수부도시가 되어가는 과정 이다 . 우리나라 8 도의 이름이 그 지역의 대표 도시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 의 사실이다 . 전주와 나주로 하여 전라도라 이름을 얻었고 , 경주와 상주에서 경상도가 되 었고 , 충주와 청주로 하여 충청도라는 지명이 되었듯이 강원도 ( 강릉 · 원주 )· 평안도 ( 평 양 · 안주 ) 함경도 ( 함흥 · 경성 ) 등이 그렇다 . 그러나 경기도는 서울 ( 京 ) 과 서울 주변 [ 畿 ] 이 라는 행정적 특수성을 지닌 땅이다 . 1018 년 고려시대 개성을 서울로 하여 황해도 일부지 역과 경기북부 지역이 경기도 땅이였을 때 지금의 경기도는 양주와 광주를 대표 고을로 하여 양광도 ( 楊廣道 ) 라 이름을 하였다 . 조선시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경기도도 함 께 남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수원이 경기도 땅이 되었다 . 따라서 고려시대나 조선전기까지 만 해도 양주를 비롯한 경기북부지역은 중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대접받았다 . 그러나 현재 경기도의 수부도시는 수원이다 . 결국 고려시대 양광도의 양주와 광주를 누르고 경기도의 중심도시가 되었던 과정이 곧 조선시대 수원의 역사라 하겠다 . 결국 수 원은 삼남대로의 교통 요지이자 경기만의 해상을 관할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대우받으 며 성장한 때문이다 . 그 과정에서 정조의 화성 건설이 그 경향성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한편 조선 중기 이후 한강을 경계로 북쪽의 양주에서 남쪽의 광주로 무게 중심이 이동 하였던 과정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 조선전기 한양과 개성을 이어주는 양주의 중요성 은 조선후기가 되면서 점차 한강 수운을 이용한 경강 ( 京江 ) 상인들의 무역과 조선백자를 구웠던 관요 ( 官窯 ) 가 한강을 끼고 형성되면서 한강 주변의 광주지역에 별서 ( 別墅 ) 를 장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