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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강 _ 나혜석의 문학과 미술 이어 읽기 | 127 이해에 나혜석은 제 1 회 서화협전에도 작품을 출품 , 몇 점 전시하였으나 작품 내용은 알 수 없다 . 1924 년에 만날 수 있는 나혜석 그림의 제목으로 < 일본영사관 > 과 < 단풍 > 이 있다 . 기자 최은희가 안둥 나혜석의 집을 방문했을 때 27 ) 응접실 좌우 벽에는 산수화 , 인물화가 가지런 히 걸리었고 , 내년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 일본영사관 > 과 < 단풍 > 도 벌써 맞추어놓았으며 2 층 화실에는 몇 백 종이라 헤일 수 없는 가지각색 그림이 빈틈없이 서 있었다고 한다 . 일본 영사관은 만주에 있는 일본영사관일 것이다 . 이 그림들은 선전에 출품되지 않았다 . < 일본 영사관 > 과 < 단풍 > 을 비롯하여 모아진 많은 작품은 최은희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세계 일주 떠나기 전에 다롄과 베이징에서 전람회를 통하여 정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28 ) 세계일주를 다녀오자 곧 김우영과 이혼을 한 나혜석은 1931 년 < 나부 >, < 정원 >, < 작약 > 을 제 10 회 선전에 출품하여 < 정원 > 이 특선에 입상하였는데 < 정원 > 이 파리의 클뤼니 박물 관을 그린 것이며 그 페미니즘 미술적 의의에 대해서는 박계리가 논한 바 있고 , 29 ) 이 입선작 중 < 작약 > 에 대해서는 나혜석이 언급한 두 개의 글을 찾을 수 있다 . 러시아를 향해서 하얼 빈을 떠나 만주리를 지날 때 ( 기차는 : 인용자 ) 황무지 좌우 수풀 속에는 백색 천연작약이 흐 드러지게 피어 있다 30 ) 하였고 , 다음 프랑스 솰레 씨 집 마당에도 덩굴 작약화가 있다고 하였 다 . 31 ) 이로 볼 때 나혜석이 작약을 그린 것은 이 여행에서의 감동이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 다 . < 작약 > 은 세계일주 후 그린 다른 그림들과 함께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 . 나혜석은 1933 년 나혜석의 미술학사를 찾아 탐방을 온 기자에게 서화협전에 출품하려 고 그려놓은 < 뉴욕교 >, < 정물 >, < 나의 여자 >,< 마드리드 풍경 >, < 총석정 > 과 조선미전에 출품하려고 그려놓은 < 삼선암 >, < 정물 > 32 ) 등을 보여준다 . 나혜석은 이들 그림에 대하여 27 ) 「여류화가 나혜석 여자 가정방문기」 , 『조선일보』 , 1925 . 11 . 26 , 『전집』 , 502 쪽 . 28 ) 이 전시회에 대한 신문기사 등 증빙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다 . 29 ) 박계리 , 「나혜석의 회화와 페미니즘-풍경화를 중심으로」 , 제 7 회 나혜석 학술대회 발표 논문 , 2004 . 4 . 23 . 이 논 문이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연계하여 작품 < 정원 > 의 페미니즘적 의미를 밝혀낸 첫 성과이다 . 30 ) 나혜석 , 「소비엣 러시아행」 , 『삼천리』 , 1932 . 12 , 『전집』 , 577 쪽 . 31 ) 나혜석 , 「구미 시찰기」 , 『동아일보』 , 1930 . 3 . 28 , 『전집』 , 666쪽 . 32 ) 「서양화가 나혜석씨-서화협전 , 조선미전에 출품하는 여류화가들」 , 『신가정』 , 1933 . 5 , 『전집』 , 553 쪽 . < 삼선암 > 은 < 금강산 삼선암 > 이라고도 표기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