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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혜석의 작품인지 진위를 확실히 가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으로 나혜석 미술에 대한 논의가 공전하는 안타까움이다 . 얼추 잡아도 4 ~ 500 점의 작품이 넘게 헤아려지는 것이 나 혜석의 그림인데 2 ) 현재 나혜석의 그림으로 알려진 것은 40 점 정도이며 선전 도록에 실린 것 18 점을 빼면 20 여 점의 작품뿐이고 이들조차 대부분 진위가 불명해 나혜석 미술의 실 체를 만나기 어려운 아쉬움은 무엇보다도 심각한 듯하다 . 지금까지 나혜석 문학연구는 나혜석이 화가이자 문인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하고 미술 과는 분리된 자리에서 소설 , 시 , 페미니스트 산문 등 문학 장르에 국한하여 연구 , 논의해 왔다 . 색채로 말한다면 활자라고 하는 흑백의 세계에서 한 걸음도 나오려고 하지 않은 셈 이다 . 3 ) 나혜석 연구에서 가장 활발했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연구는 문학을 필두로 하 여 미술에서도 나혜석의 회화에 페미니즘이 반영되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왔다 . 따 라서 실증적 작업보다 페미니즘 이론 및 시각에 편중하는 동안 우리 문학에서 지금까지 단편 「경희」가 화가 나혜석에 의해 쓰여졌다는 가장 기본적 사실을 놓쳐왔다 . 이 글은 단 편 「경희」의 주인공이 일본의 여자미술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경희」에서 나혜석 이 보여준 미술관과 나혜석이 주장한 ‘여자도 사람이외다’가 예술을 통하여 사람이 되겠 다는 선언이었음을 밝히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 나혜석은 국가 상실 ( 1910 ) 의 충격 속에 유 학 ( 1913 ) 을 하여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을 내면화하였으리라 보이고 , 한편 이때 일본에서 자연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인터내셔널리즘과 개인주의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 이 시기 사상을 대표하는 동인지 『묘조 ( 明星 ) 』와 『시라카바 ( 白樺 ) 』 , 그리 고 『세이토 ( 靑 鞜 ) 』는 문학과 미술운동을 선도하는 잡지였으며 동시에 여성해방운동을 이 끌고 있었다 . 나혜석은 여성해방사상과 아울러 예술을 통해 진정한 사람이 되는 ‘길’을 여 2 ) 1921 년 제 1 회 개인전에서 6 , 70 점 , 조선미전에 출품한 작품 20 점 ( 낙선작 포함 ), 다롄과 베이징에서 전시회를 하려 고 준비했던 수백의 작품 , 수원 불교 포교당에서 가진 전시회에서 전시한 작품 7 , 80 점 , 진고개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의 작품 200 점 등이 그것이다 . 3 ) 안숙원 , 「나혜석 문학과 미술의 만남」 , 『나혜석 학술대회 논문집 I 』 , 정월나혜석기념사업회 , 2002 , 3 ~ 81 쪽 . 안숙원 교수는 이 글에서 문학과 미술이 공동으로 지닌 시점이라든가 공간성 초점화 등을 문학에 적용하여 나혜석의 문학과 미술의 접점을 시도한 바 있으나 어디까지나 문학형식 탐구의 입장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