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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강 _ 의로운 수원기생들의 망곡례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 | 109 대한문 앞에서 망곡을 하였다 . 고종 황제를 잃은 슬픔은 나라 잃은 슬픔과 함께 민족의 한이 되어 곡성으로 울려 퍼졌다 . 이렇듯 수원기생들은 고종 황제가 돌아가신 슬픔과 나라 잃은 한을 다시 한 번 만세운동으 로 승화시켰다 . 자혜의원 앞에서 수원예기조합 의 모든 기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 치며 일제 경찰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 자혜의원 앞에는 일제의 수원경찰서가 있었다 . 경찰서는 실제로 기생들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권력을 가 진 곳이었다 . 그렇기에 누구보다 경찰서가 위협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기생들이었지 만 , 그들의 민족적 의기는 오히려 충천하였다 . 바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기생들 의 대담함은 그들이야 말로 천한 기생이 아닌 민족적인 의기가 충만했던 기생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기생들은 일제 경찰에 의해 곧바로 체포되었지만 , 이들의 만세 운동이 끝난 후 주위의 시장 상인들은 가게의 문을 닫고 철시 투쟁을 벌이는 한편 , 노동자 와 상인 , 청년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일본인 상점과 관공서에 돌을 던지며 건물을 파괴하 고 격렬한 항쟁이 이어졌다 .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은 전통적인 조선을 상징했던 화성행궁이 식민통제에 의해 훼 손되면서 , 그 곳에서 치욕적인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던 것에 대한 강렬한 생존권의 발로 이자 저항이었다 . 수원기생의 성복참례 (『매일신보』 1919 . 1 .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