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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_ 수원 그날의 함성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 101 “당지 ( 통화현 ) 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 ( 林必東 , 林弼東이라고 쓰기도 한 다 ) ”라고 표현하고 있어 , 1916 년 당시 임필동이 통화현 지역의 유력 항일운동가임을 짐작 해 볼 수 있다 . ( 3 )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 임면수는 1910 년대 중반 만주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 로 활동하였다 . 일찍이 1909 년 수원에서 삼일학교의 교장으로서 근대민족교육을 실천했 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양성중학교는 처음에는 대동중학교에서 출발 하여 신흥학교로 교명을 개칭하였다가 다시 양성중학교로 개명하였다 . 그가 교장으로 일 했던 양성중학교에 대하여는 강덕상편 , 『현대사자료』 27 조선 3 , 160 - 161 면 ( 1916 년 12 월 조 사 ) 에 잘 나타나 있다 . 養成中學校 哈泥河 南溝 四岔 排日主意 1915년 4월 양성이라고 개칭 교장 임필동 校首 李世英 교사 車貞九 金長五 史仁植 李文學 申基禹 尹振玉, 재무감독 李東寧 기숙생21, 통학생 41 학생 연령 15세부터 28세까지 중등교과산술, 國語文典, 高等小學讀本, 新訂산술, 最新高等學理科書 교육학 大韓新地 誌 초등윤리과, 新選박물학, 중등산술 新選理化學, 幼年必讀, 보통경제학, 윤리학교과서 대한국사, 사범교육학 新編화학 中等用器법 중등생리학 종래의 유지법을 일변해서 생도의 公費 등은 각자 지불하게 하고 단지 수업료는 없음 처음에 대동중학교라고 칭하다가 후에 신흥학교라고 고쳤다가 다시 양성중학교라고 개칭 양성중학교는 합니하 남구 4 차에 위치하고 있었다 . 합니하의 경우 1910 년대 전반기 신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