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page

100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 2 ) 독립운동 기지로서 객주업운영 만주지역에서 활동할 때 임면수에 대한 기록은 거의 임필동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 다 . 불령단관계잡건 재만주부 1914 년 12 월 28 일 < 불령자처분 > 자료의 별첨자료 < 서간도 재주 불령선인조사 > 총 54 명 중에 보면 임면수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在住地 : 통화현 원적지 : 경기 수원 성명 : 林弼東 연령추정 : 50 비고 : 객주업을 하는 유력자 표에는 통화현 , 유하현 , 환인현 , 해룡현 등지에 총 54 명의 독립운동가가 거주하는 것으 로 되어 있다 . 그 중 통화현 합니하에 거주하는 인물이 다수이나 , 임면수는 통화현에 거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총 54 명 중 대부분이 신흥학교 관련 학자 및 교사들이다 , 임면수 처럼 객주업에 종사하는 인물은 모두 4 명이다 . 통화현의 이계동 ( 李啓東 , 충청도인 , 50 세 , 객주업으로서 유지자 ), 이시중 ( 李時中 , 평안도인 36 - 7 세 , 객주업유지가 ), 최시명 ( 崔時明 , 평안도인 42 - 3 세 , 객주로서 유지자 ) 등이다 . 이중 임필동만을 “유력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임면수가 독립운동가로서 여관업에 종사하였음을 일본외무성문서 불령단관계잡건 재 만주부 < 1916 년 8 월 5 일자 배일선인 비밀단체 상황취조의 건 > 을 통하여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 부민단에서는 1916 년 3 월 16 일 회의결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가 날로 위험해 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 이에 200 명으로 구성된 결사대 ( 일명 山獵隊 ) 를 편성해서 통화현 에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강력히 반대하고자 하였다 . 이 계획의 일환으로 이미 7 - 8 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하였다 . 일본측 정보기록에서는 임면수를 그중 1 명으로 파악하고 있 다 . 즉 “일찍이 통화현 동관대가 ( 東關大街 ) 거주의 여관영업자 , 경기도 수원부생 임필동 ( 林必東 ) 은 이러한 종류의 무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 「불령단관계잡건」 재만주부 1916 년 9 월 9 일자 재안동영사가 일본외무대신에게 보낸 < 재만조선인비밀결사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 에도 임면수가 언급되고 있다 . 본 자료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