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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조정의 탐학과 수탈 그리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동학농민군이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의 깃발을 높이 든 혁명이다. 1894년 1월 호남지역에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었을 때, 영남지역에서는 이곳 내대리에서 최초로 기포하였다. 대접주 백낙도를 중심으로 500여명의 동학군들이 4월 초 기포였으나, 1894년 4월 15일에 진주영장 박희방은 포군 수백명을 동원해 백낙도 대접주를 체포하고 이튿날 참형하고 말았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단성, 의령, 사천, 고성, 남해, 함안, 진주 등 서부경남지역으로 확산되었고, 9월 동학농민군의 제2차 기포 때에는 진주성을 무혈 입성하였다. 10월 하순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서부경남지역에서 일어났고, 10월 14일(양 11월 11일)에는 하동 고성산(고시랑당산)에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무너졌던 것이다. 당시 산청지역 주민들은 "잡았니 잡았니 백도역(백낙도)이 잡았니?"라고 노래한 것을 볼 때, 경남지역에도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운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군들은 백낙도를 체포하기 위해 산청 덕산을 중심으로 삼장, 시천, 사월, 청양 등을 수색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동학농민군과 주민들은 지리산 속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했던 시기였으며, 천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전국에서 동학농민군이 중심이 되어 활화산이 용솟음치듯 불의에 격노하는 소리가 땅을 울렸고 하늘에 메아리쳤다. 우리가 희망찬 풍요롭고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기포하였던 산청 내대리 마을은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서 영원히 후손만대에 전해지길 바란다. 2015년 10월 20일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