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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로 있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편지를 써줄테니 그 편지 를 가지고 서울에 사는 자기의 당축을 찾아가면 많은 군자금을 줄 것이 라고 하였다. 의병부대를 이끌려면 많은 식량과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 에 이 말에 깜박 속은 김봉기 대장은 농사군으로 변장하고 서울로 잠입 했다가 동족의 밀고로 체포되고 말았다. 그후 김봉기 대장은 일본경찰로부터 무수한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취소관에게 당당히 말하기를 ‘우리 한국 민족이 5백여년을 성장하여 왔는데 너희 왜놈들의 마수로 인하여 임금 께서 압박을 받으시고 나라가 하루 아침에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삼천리 금수강산이 허공에 뜰 지경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백성된 도리 로써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창의한 뜻은 왜국을 몰아 내어 나라를 보전하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하기 위함이었는데 오늘 이 지경이 되었으니 오로지 통분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김봉기 대장은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져 순국하였다. 김봉기 대장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지역을 누비며 한번도 패 전한 적이 없었다고 했으니, 부하들을 잘 통솔하고 전략에도 뛰어난 훌 륭한의병장이었다. 1992년 3월 신둔면 면민들이 뜻을 모아 신둔국민학교 정문 옆에 추모 비를 세웠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