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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명장 김봉기 기념비 〈위치 : 이천군 신둔면 수광리 신둔국민학교 앞〉 績블 1907년 정미의병 당시 활약한 의병장 김봉기는 신둔면 남정리 사랍으로 당시 43세 였다. 기울 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여 의병봉기의 뜻올 세우고 이근풍 ·주창룡·조상현·엄옥여 퉁의 동지들과 의논하여 1907년 7월 초순 이천군에 있는 이근풍의 집 에서 군포수 32명을 모집하고 의 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이근풍을 총대장으로 삼아 출 진하여 광주군에 도착하였는데 총대장 이근풍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않아 도망하였으므로 김봉기가 총대장이 되어 이천옵올 습격하고 일본 기병대와 접전올 벌렸다. 그후 김봉기 부대는 새로 가답해온 의병들로 수효가 점점 -불어나서 광주 • 양근 • 지평 • 여주 • 이천 지역을 누비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렸고, 장호원 • 음죽 • 죽산 • 안성 • 양지에서도 여러 차례 기습전올 감행하고 친일파 일진회원들을 붙잡아 처형하기도 했다. 그해 9월 양주군 마을에 도착한 김봉기 부대는 우연히 구 한국군 장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