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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읍에서는 4월 2일 이천장날올 기해 약 3백여명의 시위군중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으며, 당시의 이천공립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최종석 • 강문형 퉁이 주도하였다. 모가면 서경리에서는 신둔면 시위운동에 참여 했던 권충효와 한석통이 주통이 되어 시위를 벌렸고, 4월 4일에는 장호 원에서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그밖애도 백사면 송말리와 현방리, 대월면 군량리, 부발면, 율면 둥지에서도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6. 이천의. 독립투사들 3. 1운동 이후의 민족 항쟁은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과 함께 만주일대 와 인근지역에 근거지를 둔 무장 독립군 단체들에 의한 활발한 무력 항 쟁으로 발전하였다. 독립군 단체들은 군사작전을 통해 정면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소수의 정예요원을 국내로 잠입시켜 일제의 요인암살, 식민지 중요기관 파괴, 군자금 모집같은 임무룰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천 사랍 이수홍은 1926년 주만참의부의 요원으로 국내로 잠입하여 동소문사건·백사면사건·안성군사건·수은통사건을 차례로 일으키며 신출귀몰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친지의 밀고로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져 순국하였다. 유돼수는 이천읍에 거주하면서 이수홍을 도와 수은통사건 을 혼자서 감행하는 퉁 활동하다가 함께 체포되어 순국하였으며, 율면 총콕리 사랍인 김원조 역시 독립군 요원으로 통지들과 함께 군자금 모 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순국하였 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