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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에서 좌군대장으로 엄형순과 합세하여 활동하였다. 김봉기는 마장 면 관리에서 의병올 조직하여 원적산 줄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유격전을 벌렸으며, 신창현은 김봉기 대장의 부하로 있다가 김봉기 대장이 체포 당하자 계속 부대를 지휘하면서 일본군에 저항하였다. 이천은 이와같은 이천의병장들의 활약과 함께 원주의 민긍호와 이강 년 의병부대의 활동 무대가 되어 크고 작은 전투와 저항운동이 거의 매 일처럼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일본군의 보복을 받아 이천읍을 비롯한‘R인근 마을들이 불에 타서 갯더미가 된 유명한 <이천충화 사건 >이 일어났다. 일본군들이 의병에 가담한 마을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 며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당시의 이천군수가 관찰사에게 피해상황을 보고한 내용을 보면 이천 읍의 480호를 비롯하여 신둔면과 백사 • 부발ι마장면 릉지에서 민가 930호가 불타 없어지고 사망인원도 14명이나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되어 있다. 영국의 신문기자인 맥켄지가 당시의 의병항쟁이 매우 격렬했던 지역 들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겼다. 맥켄지가 이천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보 면 ‘이천읍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일본군을 피해 산 속으로 달아나 숨어 버렸다. 한 노인을 만나 여자와 아이들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더니 높은 산을 가리키며 모두 저기로 갔소, 여기서 폭행 을 당하느니 보다는 아무도 없는 산 속에 숨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라 고 대답했다’라고 적고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