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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석 열사의 본관은 영일(迎日)로 시조는 고려 의종(1127~1173년) 때 왕명 출납 관직인 추밀원 지주사(知奏事)를 지낸 동하(東河) 습명(襲明)의 후손이다. 포은 정몽주는 시조의 10대손이다. 증조부는 유능(裕能)이고 조부는 치엽(致燁)이고 부친은 재만(載萬)이다. 정 열사는 1939년 3월 26일 경남 울산군 농소면 천곡리 47번지에서 출생했다. 농소국민학교와 농소중학교 울산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 재학 중이던 1960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노린 3.15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한 자유.민주.정의의 4.19 혁명이 일어났다. 대학생 시위에 적극 가담해 자유당의 독재와 맞섰던 정 열사는 선봉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경무대 쪽의 경찰이 손 총탄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4월 25일 숨졌다. 당시 장례는 울산 군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유족의 뜻에 따라 유해는 울산시 북구 천곡동 순금산 중턱의 선영하에 안장됐다. 서울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에도 정 열사의 묘소가 있다. 4.19 혁명 정임석 열사 추모사업회는 매년 4.19 혁명 기념일에 울산의 묘소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추모사업회는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절(殉節)한 정 열사를 추모하고 나라를 위한 정 열사의 의로운 정신을 후세에 길이 기리고 애국 충정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 깨우기 위해 2017년 4월 이 추모비를 세웠다. 2017년 4월 19일 4.19 혁명 정임석 열사 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