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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응은 대구(大邱) 사람이다. 그는 1920년 임시정부(臨時政府) 경북 선정사(宣政使)로 임명되어 동지 고정일(高政一)·윤 철(尹喆)·이태훈(李泰勳)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조달기반을 조성하였으며 동년 9월 경상·충청·전라도 등지를 순방하며 자산가들의 자산명부를 작성하여 군자금 조달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조석환(曺奭煥) 등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여 그들에게 8백원을 받아 임정파견원 고일치(高一致)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21년 2월 경북 칠곡군(漆谷郡)에 사는 윤병돈(尹炳敦) 등 경북에 거주하는 부호 수명에게 2천원 내지 5천원을 요구하는 군자금납입명령서(軍資金納入命令書)를 송부하고 윤병돈으로부터 300원을 받아 이태훈(李泰勳)에게 전달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일경에 피체되어 1922년 3월 30일 소위 공갈 및 제령 제7호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