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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창의회맹소 영수 의병대장 성재 기삼연 선생 묘소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마곡리 산43 기삼연(1851~1908) 의병장은 장성군 황룡면 이곡리 하남마을 입재에서 진사 기봉진(奇鳳鎭) 선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집안의 대학자인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 1798~1879)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다. 선생은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일본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낭인배(浪人輩)들에게 살해당하고, 이어서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1896년 2월에 의병을 일으켜 백마장군(白馬將軍)으로 이름을 떨쳤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나라의 주권을 잃게되자 다시 호남 의병들을 모아 장성 수연산(隨緣山) 석수암(石水庵)에서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고 대장에 추대되어 장성, 영광, 고창, 담양, 광주 등지에서 의병을 지휘했다. 선생은 담양의 금성산성(金城山城)에서 의병을 이끌고 주둔할 때 일본군의 습격으로 상처를 입고 인근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마을에 은신하였으나 1908년 2월 2일 체포되었다. 선생은 곧바로 광주로 옮겨져 이튿날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광주천 백사장에서 일본군의 칼에 왼팔이 잘리고 머리에 총 관통상으로 순국하였다. 시신은 광주 서탑동(현 사직공원)에 안장되었고, 그 후 조상들이 모셔진 장성 황룡면 관동리 21번지(보룡산)로 이장하였다가, 2009년 5월 생전에 사셨던 하남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