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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일은 1938년 음력 11월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에서 보천교(普天敎)계열의 '신종교(新宗敎)'에 입교하였다. 그가 입교한 '신종교'는 정읍군 입암면 마석리 김언수(金彦洙)가 창시한 것으로, 최수운(崔水雲)을 교조로 하는 시천교(侍天敎)와 강증산(姜甑山)을 교조로 하는 증산교(甑山敎) 두 교의에 기초해 유불선(儒佛仙)을 통합한 민족종교였다. 이 '신종교'는 표면적으로 시천교를 포교한다고 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다.'신종교'에 입교한 후 배상일은 1940년 5월 10일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황의붕(黃儀鵬)의 집에서 김언수, 배상일, 신영화(申永和) 등과 모임을 가졌다. 이때 '신종교'의 창시자 김언수가 말하기를, '신도 12,000명에게 신통력을 가진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되는 수양을 시키는데 있으며, 강증산의 유저(遺著)인 대순전교(大巡典經)에 의하면 가까운 시일에 전 세계에 병재(病災), 전재(戰災), 흉재(兇災)의 3재(災)가 발생하여 부자(富者), 지자(智者), 권력계급은 모두 사멸하고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은 멸망에 임박할 것이다. 그때 위의 도통군자 12,000명은 그 신통력으로 인하여 생존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장래에 오래도록 조선건국의 큰 공로자로 우대받을 것'이라고 하였다.그후 배상일은 6임(任)에 임명되어 함경남도 책임자가 되었으며 1940년 5월 11일 오전 1시부터 증산교 본궐(本闕)에서 결사조직의 맹서식(盟誓式)을 갖고 민족독립과 건국사업에 헌신하자고 결의하였다.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배상일은 1940년 12월 1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43년 8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1944년 8월 11일 출옥하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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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출처는 정읍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