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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투입할 계획이었다. 210) 일제는 ‘작전’ 기간에 체포되거나 자수한 의병 중 기소유예자와 훈계방면자를 선별해 이 공사에 강제로 동원하였다. 일제는 대상자 약 1,500명 중 절반 정도를 투입 가능자로 추산했다. 211) 생활난 때문에 의병에 가담한 사람이 많다는 점에 착안한 발상이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그들이 의병에 재가담하는 것을 막고, 앞으로 예상되는 의병진압과 경제적 침투를 보다 용이하게 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해남-하동간 도로공사의 1차적 목적은 의병의 재발을 막는데 있었다. 그리고 2차적 목적은 각종 소요 발생시 군경을 투입하고 식민정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기간시설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일제가 이처럼 해남-하동간 도로를 가장 먼저 개수 확장한 것은, 이 도로가 일본-부산-목포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전라도 의병이 연해 도서 지역까지 확산되자 일제는 대규모의 군대를 일시에 투입하여 초토화하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진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기 후기의병을 주도했던 전라도 의병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에 일제는 경제적 침투를 비롯한 병탄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 또는 자수한 의병들은 해남-하동간 도로공사에 강제로 동원되어 일제의 교통로 확보에 이용되는 비극을 겪었다. 210) 『편책』, 『독운사』 16, 165-166쪽과 皇城新聞 1909년 11월 1일자 「歸順者救活法」 참조. 211) 『편책』, 『독운사』 16, 698-708쪽 그리고 같은 책 17, 253-256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