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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315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양자 모두 장기항전을 위한 근거지 확보전략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다만 유인석의 백두산근거지론은 국제적 환경을 중시했기 때문에 국외근거지를 추진했으나, 고광순의 지리산근거지론은 향토수호를 중시했기 때문에 국내근거지를 추진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지리산의 의병기지화는 고광순의 지리산근거지론에서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고광순은 지리산을 의병의 장기항전을 위한 근거지로 삼는 전략을 수립한 창안자라 할 수 있다. 이는 약 10년 간의 의병활동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광주-전남 의병은 시기별로 일정한 변화를 겪으며 성장, 발전하였다. 그런데 전기와 중기 의병의 경우에 주도인물이나 조직과 활동면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 반면, 후기의병은 그 이전과 대조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1904∼5년을 기점으로 구분해온 기존의 연구 106) 와는 상당한 차이가 발견되는 것이다. 제7장 일제의 의병탄압과 ‘남한폭도대토벌작전’ 이 글에서는 남도의병의 활동에 대응하여 일제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07)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의병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것이 조직되는 과정 및 활동을 밝히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물론 그러한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제가 의병을 어떻게 탄압하였나를 살펴보는 것도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제가 의병을 어떻게 인식하였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여 진압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일제가 자행한 의병탄압의 실상을 아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먼저 일제가 어떻게 의병을 탄압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의 단계별 침략정책과 의병의 성쇠에 따라 그 대응책도 변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믿어진다. 이를테면,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강경책을 구사하는가 하면, 歸順을 적극 장려하며 회유하거나, 强穩策을 병행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대응방법 가운데 의병탄압의 주체였던 정부와 일제에 의해 추진된 선유활동과 귀순정책, 그리고 무력진압과 관련된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일제의 무력진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이른바‘남한폭도대토벌작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 작전으로 말미암아 기세를 떨치던 호남의병의 활동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제가 이 작전을 실시한 배경과 목적, 그리고 전개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주목해보았다. 그리고 전남 海南에서 경남 河東間 도로건설 문제를 통해 일제가 체포 또는 자수한 106) 오길보, 『조선근대반일의병운동사』(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 및 홍순권,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 (서울대 출판부, 1994), 6쪽의 각주 5 참조. 107) 이와 관련하여 홍영기의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일조각, 2004) 제3부 일제의 대응책을 주로 참고하여 정리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