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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275 였다더라(대한매일신보 1909년 1월 9일자, 「머슴군의병」). 위의 인용문은 안규홍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머슴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키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조직의 시기나 합세한 일 등은 사실과 거리가 있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로써 보면, 안규홍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성격의 자위단에 반발하면서, 오히려 그 조직을 창의의 기반으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는 양반 유생들에게도 자신의 거사 계획을 알려 그들의 도움을 얻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미천한 그와 함께 거사를 도모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였다. 342)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의병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였다. 즉,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머슴들을 데리고 순천에서 활동하는 姜龍彦 의진에 투신하였다. 343) 1908년 2월경 강원도 출신의 의병장 강용언은 조계산 香爐庵에 근거지를 구축하고서 수십명의 의병을 데리고 활동중이었다. 이무렵 안규홍 등 머슴출신의 의병들이 강용언 의병부대에 가담한 것이다. 그는 안규홍을 맞아들여 副將에 임명하였다. 344) 현지 사정에 밝은 안규홍 등이 가담함으로써 강원도 출신의 강용언 의병부대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으리라 믿어진다. 하지만 강용언 등은 듣던 바와 달리 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피고 손덕오·염인서는 동년(1908 ; 필자주) 4월 6일경(음력 3월 6일)에 위 수괴 안계홍이가 다 른 폭도 수괴 강사문(姜士文 ; 일명 龍彦)은 양민에게 재물을 겁취한 자라 하여 동인을 모살하려는 정을 알면서 (중략) 안계홍의 부하 30여 명과 함께 순천군 문전면 고부기 산중에서 포박 (중략) 동 인을 총살(『자료집』 별집 1, 840∼841쪽). 1908년 4월 안규홍은 부하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강용언을 처단하였다는 것이다. 그를 제거하고서 의진의 실권을 장악한 안규홍은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이들은 부서를 정하고 군기를 정비함으로써 새로운 의병부대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안규홍 의진이 독자적으로 활동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투 경험과 전술에 뛰어난 전략가가 필요하였으며,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의병의 확보도 시급하였다. 먼저 그는 의병을 보강하기 위해 새로운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는, 순천과 고흥 등지의 시장을 돌며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한 후 의병에 투신해줄 것을 호소하여 상당수의 의병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모집 방법에 평민의진의 성격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전략과 전술에 밝은 인물들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였다. 342) 『담산실기』, 「전」 참조. 343) 홍영기, 앞의 책, 333쪽. 344) 『폭도사』, 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