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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273 혹은 ‘담사리의병’이라 즐겨 불렀다. 이를 계기로 훗날 사람들은 그의 호를 澹山이라 미화시켰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강직한 성품의 청년으로 성장한 것 같다. (부군은) 타고난 성품이 강하고 정직하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너무 강직하다고 남에게 미움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성장해서는 호방하고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다.(『澹山實記』, 「家狀」) 그의 이러한 성품은 타고난 면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협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규홍은 어릴 때부터 약 20년 동안 머슴으로 일해왔던 까닭에 사람들은 그를 담사리라 불렀다. 그가 장성한 이후에도 그의 호칭이 바뀌지 않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든 일에 혹사당한 탓에 그의 체구는 왜소한 편이었지만 매우 다부진 몸매를 자랑하였다. 그는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홀로된 어머니께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러한 그를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고, 자연히 같은 처지의 머슴들로부터 신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의 그러한 강직한 성격이 의병장 추대과정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염재보가 그를, “비록 나이는 적고 신체는 작지만 담대하기 때문에 가히 대장으로 삼을 만하다”고 평하면서 그를 의병장으로 추대했던 것이다. 이로써 볼 때 그가 의협심이 강한 청년이란 사실이 널리 퍼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무렵 일본은 을사조약과 군대해산 그리고 고종퇴위 등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의 예속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일본 상품의 대량 유입과 금융시장의 지배를 위한 계획이 진행 중에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토지를 점탈하고 어장을 빼앗기 위해 일본 농어민의 대량 이주가 적극 추진되고 있었다. 보성의 외진 시골에서 비록 머슴을 살던 안규홍이었지만 이와 같은 일본의 침략에 대해 크게 격분하였다. 마침 을사년 10월의 변고를 듣고 항상 개탄해 마지 않았는데, 혹 깊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천장 을 쳐다보며 앉았기 여러 번이었다. 곁에서 함께 자던 사람이 그를 위로하여 세상이 되는 대로 살 자고 하였다. 그럴 때면 공은 멍하게 앉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숨만 길게 내쉴 뿐이었다(『담 산실기』, 「전」). 을사조약이 불법적으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장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거사할 뜻을 굳힌 것 같다. 그의 이러한 결심은 당시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