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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23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력 1월 봉기한 이래 약 두달간 지속될 정도의 지속성을 지녔으며, 강력한 무장조직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부는 장흥부사 李容泰를 안핵사를 파견하여 조사하였다. 그런데 안핵사 이용태는 일체의 죄를 동학교인에게 돌려 교인들의 명부를 작성하여 살상·체포·방화·폭행을 일삼았다. 이에 전봉준 등 고부농민봉기의 지도부는 인근의 茂長으로 피신했다가 그 지역의 동학대접주인 孫和中의 도움을 받아 음력 3월 21일 재차 봉기하였다. 이른바 茂長起包인데, 이로부터 고부지역의 농민봉기가 전라도 전체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무장에서 전라도 각지에 보국안민을 표방하는 글을 발송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布告하였다. 이 세상에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인륜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윤리는 인륜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이다. (중략) 가혹한 정치는 날로 심해져 원망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와 아버지와 자깃 사이의 윤리,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의 분별은 마침내 다 무너지고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일찍이 중국의 管子께서 말씀하시기를 “四維, 즉 禮義廉恥가 떨치지 못하는 나라는 결국 망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형세는 그 옛날보다도 더 심하기 그지없으니, 예를 들면 지금 이 나라는 위로 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 方伯守令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나라의 위태로움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몸 살찌우고 제 집 윤택하게 할 계책에만 골몰하고 있으며, 벼슬길에 나아가는 문을 마치 財貨가 생기는 길처럼 생각하고, 과거 시험 보는 장소를 마치 돈을 주고 물건을 바꾸는 장터로 여기고 있으며, 나라 안의 허다한 재화와 물건들은 나라 창고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의 창고만 채우고 있다. 또한 나라 빚은 쌓여만 가는데 아무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교만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짓을 하는 것이 도무지 거리낌이 없어 八道(조선 각지; 번역자 주)는 모두 魚肉이 되고 만백성은 모두 도탄에 빠졌는데도 지방 수령들의 가혹한 貪虐은 더욱 더하기만 하니 어찌 백성들이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바, 근본이 깎이면 나라 역시 쇠잔해 지는 법이다. 그러니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방책을 생각하지 않고 시골에 집이나 지어 그저 오직 저 혼자만 온전할 방책만 도모하고 한갓 벼슬자리나 도둑질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어찌 올바른 도리라 하겠는가. 우리들은 비록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백성들이지만 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입고 사는 까닭에 나라의 위태로움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 팔도가 마음을 함께 하고 億兆 蒼生들과 서로 상의하여 오늘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노니, 오늘의 이 광경은 비록 크게 놀랄 만한 일이겠으나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각자 자기 생업에 편히 종사하여 다 함께 태평성대를 축원하고 다 함께 임금님의 德化를 입을 수 있다면 천만 다행이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