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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인 의병장들은 대체로 경서나 사기에 통달한 명문 유생들이 많았다. 176)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그는 매우 특이한 존재라 하겠다. 177) 김동신(1872-1933)의 집안은 충남 회덕에서 대대로 세거해왔다. 178) 1908년 6월 그가 체포된 후 작 성된 「聽取書」 179) 에 의하면 그의 집안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中人이었고, 그는 의병에 가담하기 전에 는 醫業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 소식에 김동신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일제의 침략을 강력히 비 판하며 의병에 나선 것이다. 180) 그는 의병에 가담하기 위해 민종식·최익현 등과 접촉하였던 것 같 다. 181) 하지만 그가 직간접으로 관련된 의병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독자적인 거병계획을 세 웠다. 더욱이 그는 민종식으로부터 받은 ‘勅旨’를 소지하고 있었으므로 의병을 모집하는데 유리하였 으리라 믿어진다. 또한 당시 전라도의 경우에는 최익현의 격문이 널리 유포되어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전라도의 뜻있는 인사들은 여러 차례 의병봉기를 시도한 바 있었다. 182)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동신은 의병모집에 적극 나선 것이다. 그가 “은거한 선비를 찾아다니고 의를 행하는 인물을 몰래 모았다” 183) 라거나, “거창·삼가·함양 등지를 두루 다니며 忠志의 선비를 찾아보 았다” 184) 라고 한 점으로 보아 그러하다. 당시 그는 전라·경상도 지방을 돌며 의병을 모집하는 과정에 서 자신을 承旨라고 소개하였던 것 같다. 그로 인하여 그는 일제에 의해 승지를 僭稱한 자로 파악되었 다. 마침내 그는 독자적인 의병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청취서」에 문 작년(융희 원년) 음력 8월 일 불명에 네가 병을 일으킨 장소는 어떤 곳이냐? 답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산중 然菴寺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共計하야 그곳에서 병을 모집하였다. 문 그때 모집한 병은 몇 명이냐? 답 80명이다(『편책』, 『독운사』 11, 228쪽). 176) 『폭도사』, 8쪽. 177) 김동신 의병장과 그의 의병부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다음과 같다. 崔根茂, 「義兵大將 金東臣에 關한 硏究 -1906.1-1908.5 間의 義兵活動을 중심으로-」, 『全州敎育大學 論文集』 18(1982) 홍영기, 「구한말 김동신 의병 에 대한 일고찰」, 『한국학보』(1989년 가을호)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제2부 제3장 제2절 참조. 이 글은 저 자의 책에 실린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음을 밝힌다. 178) 『경주김씨세보』 제1책 을편(국립 중앙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古 2518-系110-25, 충남 홍성, 1934), 1쪽. 179) 「聽取書」는 김동신이 1908년 6월 6일 대전경찰분서 순사들에게 체포되어 같은 달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동안 4차 에 걸친 신문내용를 담고 있다. 현재 이 자료는 『독운사』 1, 751-756쪽과 같은 책 11, 226-232쪽에 수록되어 있 다. 이 글에서는 『독운사』 11을 주로 이용하겠다. 180) 「金東臣判決文」, 『公州地方法院 刑事判決原本』(국가기록원 소장, 문서번호 77-2773, 1908). 181) 『편책』(국가기록원 소장, 경무 88-26, 1908), 0743-0748쪽. 182) 『폭도사』, 21-22쪽. 183) 『文集』, 2b쪽. 이 자료에 대한 설명은 홍영기, 앞의 책, 262-263쪽의 각주 106 참조. 184) 위의 책, 5a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