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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203 鄭長 ? 25 현내면 사창 김율 鄭辰三 마촌면 군동 기삼연 鄭辰玉 마촌면 남산 기삼연 鄭贊局 23(27) 관산면 백운동(내방) 농업, 자수(1908. 2. 19) 鄭學洙 鄭興錫 31 내동면 나신촌 李 某 자수(9. 25) 趙一大 무장면 영당리 기삼연 車奉吉 24 내재면 하방리 농업, 자수(1908. 3. 23) 崔奉收 38 현내면 사창 김율 崔景作 28 염소면 체포(9. 23) 崔祥眞 영마면 기삼연 崔判大 마촌면 남산리 기삼연 崔化敍 27 동부면 입동 김율 卓明善 29 불광면 와우 김율 許成玄 황량면 신흥 기삼연 黃大龍 23 삼북면 합천동 박포대 자수(10. 23) 영광의 의병들은 일제와 맞서 투쟁하였는데, 그들의 상대는 주로 군읍에 주둔하는 일본 수비대나 경 찰들이었다. 41) 1908년 1월경 영광에서 활동하는 의병의 동향에 대하여 일본군경은 아래와 같이 기록 하고 있다. 一進會員의 報告에 의하면 靈光 咸平 長城 羅州의 各郡을 橫行한 暴徒의 主力은 靈光郡 社倉市에 集 合하고 있다. 그리고 그 目的으로 하는 바는 首魁 金有成(金有聲 : 필자주)이 이끄는 一隊도 奇三鉉 (奇三衍 : 필자주) 金太元 및 金律(金聿 : 필자주)이 이끄는 各隊도 合同一致(合同一致하면 其數가 約 5百餘일 것이라고 思料된다)하여서 靈光邑內에 駐屯한 守備隊를 습격하고 나아가 羅州邑內를 습격하 고 다시 나아가 榮山浦 駐在의 憲兵隊도 衝擊하려는 計劃이다(『편책』, 『독운사』 8, 519쪽). 호남창의회맹소의 핵심인물들인 기삼연·김용구·김준·김율 형제 등이 합동으로 영광읍뿐만 아 니라 나주와 영산포 주재의 일본군경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시 의병들은 각지에 주요 거점을 확보한 일본군경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 꾸어 말하면 근왕이념에 충실하여 北上하기 보다는 향토수호라는 문제를 더욱 우선시하였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들이 법성포를 공격하려는 것도 일본 이주민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생각 41) 영광에서 활동중인 의병들은 영광에 들어온 일본세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1907년 9월이후 이듬해 1월까지 영광읍을 세 번이나 공격하였다(『편책』, 『독운사』 8, 5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