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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손화중의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정식, 화중은 자이며, 호는 초산이다. 1861년 6월 22일(음력) 정읍 과교리(현 정읍시 과교동)에서 출생했으며, 처남 유용수와 함께 경상도 청학동에 갔다가 동학에 입교하였다. 손화중은 선운사 도솔암 암벽불상에 있다는 검단대사의 비결록을 꺼냈다는 데서 신비의 인물로 알려져 잇으며, 전봉준,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등과 함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전주화약 이후 나중의 장성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동년 7월에 있은 나주성 전투에서는 최경선이 거느리는 동학농민군과 함께 주력부대를 이루었다. 9월 봉기 때에는 일본군이 나주해안으로 상륙한다는 설이 있어 북상에 참가하지 않고 최경선과 함께 나주에서 대비하였다. 1894년 11월 공주패전 후 나주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태인 전투를 최후로 대세가 재기 불능에 이르자 11월 27일 광주에 입성한 후 12월 1일에 동학농민군을 해산시켰다. 그 후 몸을 피해 고창군 부안면 안현리 이모씨의 제실 있다가 체포당한 뒤, 1895년 3월 29일(양력 4.23) 교수형에 처해져 35세의 나이로 최후를 마쳤는데,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묘는 빈묘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