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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4.19학생혁명기념탑건립취지문 4.19학생혁명은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의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동반 당선시키기 위하여 자행된 전대 미문의 부정 선거가 도화선이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관권. 금권. 폭력으로 점철된 3.15 부정선거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으며 이를 규탄하는 학생과 시민의 봉기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자유당 독재 정권의 이러한 만행은 4월 18일과 19일에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청주 등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수십 만 명의 청년학도와 시민들이 총궐기하게 함으로써 마침내 전국적인 시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당시 충북에서도 4월 19일을 전후하여 청주에서는 청주대학교, 청주공고, 청주상고(현 대성고), 청주농고, 청주고, 세광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기고 충주에서는 충주고 제천에서는 제천고, 제천농고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수백 명의 학생을 경찰이 연행하여 구금하고 심문을 하였다. 또한 전국 5대 도시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되고 마침내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총격을 가해 맨 몸으로 거세게 저항하던 186명의 꽃다운 고귀한 생명이 민주의 수호신으로 산화했으며 6,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써 급기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여 자유당의 12년 장기정권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이처럼 4.19혁명은, 강압적인 독재정권이 학생들에 의해 타도된, 세계사상 최초로 성공한 학생민주혁명이었다. 이와 같이 값진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쟁취한 4.19혁명은 민주당 정권에서는 혁명으로 정의되었으나 1961년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부 정권은 4.19를 의거로 규정함으로써 4.19혁명을 폄하하였으나 다행이도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승리로 군부독재 정권이 종식됨으로써 1987년 10월 29일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고 명시하여 4.19민주혁명 정신이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헌법 정신임을 분명히 밝히게 되었다. 4.19정신과 건국이념은 우리나라 민주헌정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지표로서 후세에 길이 계승되어 승화시켜야 할 책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이에 충북 4.19혁명 기념 사업회는 2009년 3월 18일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김현수 전 청주시장을 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선임하고 충청북도지사와 충청북도 교육감, 청주시장을 방문하여, 3개 기관으로부터 각 1억 원씩 3억원을 지원받아 4.19혁명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인 2010년 5월 19일 청주시가 발주하여 청주의 중심에 위치한 유서 깊은 상당공원에 역사적인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2010년 11월 9일 충북 4.19 학생혁명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