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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향토 문 화총 서 @ 돌 마 마을지(下) 3. 분당동의유래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분점리(益店里)와 당우리() 훔-|돼里)였는데 일제가 1914 년조선 행정구역 변경 당시에 분점리에서 분(씀)자를따오 고 당우리에서 당(J 훔)자를 따다가 합성어(合成語)인 분당리( 益庸里)로 개명하였다. 1971년에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73년에 성남시 승격과 동시에 성남시 분당통으로 승격하였고, 1975년 성남시 돌마출장소에 편 입되었다. 1989년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성남시 분-당구에 편입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분당리는 옛 이름인 분점리(益店里)라는 지명 과 어울리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였고 분당초동학교(益l훔初等學校)와 양영중고동학교(養英中高等學校)가 있어서 이 지역에서는 교육과 치안 과금융, 의료띄 중심지였다. 특히 양영중고등학교의 교명은 민족지도자 (民族指펄者)이셨던 해공(海公) 신익희(申麗熙) 선생이 지어주신 교명 (校名)으로 양육영재(養育英才)에서 양영(養英)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주 시고 “영장산( 靈長山) 정기(精氣)어린 거룩한 터전” 이라는 첫 가사로 시 작하는 양영교가(養英校歌)의 7} 사(歌詞)도 지어주신 민족지도자(民族 指평者)의 깊고거룩한뜻이 담겨 있는곳이기도하다. 동이를 파는 점포가 즐비하여 붙여진 이름인 분점리의 화려했던 역사 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지금도 원주민(原住民)들의 뇌리(腦꿇) 속에 사라 지지 않는 것은 이 지역이 예로부터 상공(商I)의 지역중심지(地域中心 地)였음을상기시켜주는산교훈을이어가는것이다. 3-1 . 마을명칭 • 점골(結, 정(井)골) ; 분당리 129번지에서 131번지 일대에 있던 미을인 데 분점리에서 토기를 구울 때 이곳에서 양질의 점질토(;해質土)가 대 .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