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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문화층서 @ 兵)과 기병(騎兵) 2 만을 거느리고 치양(雄壞, 黃海道 白 Jll那 白川둠)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 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 를 보내 군시를 지름 길로 치양( 雄壞)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재빠르게 쳐서 깨 트리고 5CXXl명을 죽이거나 사 로잡았는데 그 사로잡은 적닫은 장수 와 군 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근초 고왕(近혐古王) 26년(서71371)에 고구려가 군시를 일으켜 왔 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펄河) 위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그뜰이 이르기를 기다려 재빨리 치니 고구려 군사가 대패하였 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 께 정예군사 치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가 평양성(平壞城)을 공 격하였 다. 고구려왕사유(斯由. 故國原王)가 힘을 다해 막아싸웠으나 빗 나간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과 “근구수왕(近↑九首王) 3년( 서713π) 겨울 10월에 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쳤다.”는 기록 과 “침류왕We流王) 원년(元年. 서기384)에 호승(胡增) 마따난타존자(摩 羅難院尊者)에 의하여 백제에 불교가 들어 왔 다.”는 사 실(史實)과 “침류 왕(林流王) 2년(서기385)에 서울 한산(漢山)에 절을 세웠다. ”는 기록이 이 지역에 백제 최초의 절이 세워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아 니지만 율동(票洞)의 영장산(靈長山) 금강사(金剛놓) 터가 열 사람의 승 려 중 한 분의 스님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묘로 연구하고 발굴하여 볼 필요가있는 것이다. “아신왕(阿宰王) 3년(서71394)에는 맏아들 전지(뺑支)를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 다.”와 개로 왕(蓋園王) 21년(서기475)에는 장수왕(長壽王) 의 간자(間者, 첩자)인 승려 도림(道빼)이 개로왕에게 고단 수의 바둑실력 (模力)으로 흰-심을 사고는 감언이설(검 픔利說)로 왕을 설뜩하여 각종공 역(各種工投)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주 시공케 하여 그로 인하여 백제의 국고가 탕진(灌盡)되도록 하고는 장수왕(長壽王)에게 돌이-가 백제 침공 의 적기(適期)임을 전하여 한성백제(漢城百濟)의 종말을 고하게 만들었 을 때에도 태자인 문주(文周)가 신라(新羅)에 원병(援兵)을- 청하러 가서 66 롤 마 마을지(T) 찢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