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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문화총서 @ 기사에는 옛날사람들의 개와 관련한 생할을 소개하는 글가운데에 이팽 수와관련된 이야기를소개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권신 김안로는 개고기를즐겨 먹었는데 이팽수를자제처 럼 생각하였다. 이팽수가 봉상시 참봉이 되자, 크고 살진 개뜰 골라사다 가 요리해 김안로에게 올렸고, 김안로는 이팽수의 개고기 구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는 것이다. 후일 이팽수가승정원 주서(承政院 奏書) 가 되었는데 당사 사신(史民)은 평가하기를 이팽수가 김안로에게 개고기 요리를 해준 공으로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고 하였다. 승정원 벼슬은 아 무나 하는 것이 아닌 청직(淸職)인데 이팽수는 개고기로 주서가 되었으 므로 까장주서(家揮注書)’ 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종실록 29년(1534) 9월 3일』. 가장이란 ‘집노루’ 란 돗인데, 개고기렐 가장이라 불렀던것이다. 그리고 태안군의 증손인 이경인의 묘도 함께 있다. 이겪인(1575∼ 1642)은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고 함흥판관, 안산현 감, 이천도호부사를 지냈다. 묘 앞에는상석, 혼유석, 묘비가 있고 망주석 2개와문인석 2깨가좌우로마주보고 있다. ‘정자동’ 의 지명유래는바로 이경인과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곧조 선 제9대 임금 성종의 아들(12남) 무산군(않山君)의 제 5자인 태안군(泰 安君) 이팽수(李종壽 : 1490∼1525)의 묘역과 그 자손들이 터를 잡았으 며, 태안군의 증손이 되는 이경인(李敬仁 : 1575∼1642)이 이곳에 낙향하 면서부터라고생각된다. 이경인은지를극보(克南),호를정촌(亨村)이라 하였고, 1642년(인조2) 이괄의 난을 평정히는 데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었고, 안산현갑, 이천도호부사에 제수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병자호란 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변에 내펴와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閔雲野碼)으로 소일하였다. 그가 즐겨 찾던 ‘정자가 있는 마을’ 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정자리’ 가 되었고, 그의 호 ‘정촌’ 도 여기 서 비롯된 것이다. 정자는 예부터 사람들이 자연과 어울리띤서 산천의 4。 돌마 마을지( 下) .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