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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돌마지역의 인구는 1789년의 『 호구총수 』 에 515호 2꺼 3명으로 기록되었고 남자는 1,383명, 여자가 1,390명이다, 1836년의 『남한지』기 록에는 46o 호에 2,364명의 인구인데 남자가 1,140명에 여자가 1,224명으 로 기록되어 있i~ 을 볼 수 있다. 1842∼1843년경의 『 경기지』 「광주부읍 지』에는 575호 2,386명의 인구인데 이 중남자 1,020명에 여자 1,366명이 다. 1909년의 『 민적통겨 l표 J 에는 616호(농가594 호)에 2,089명, 1964년의 『경기도 통계연보 』에는 1,066 호(농가 832호)에 6,334명으로 기록되고 있 다. 그 후 1968 년의 돌마면 인구는 6,124명이고 1969년에 6,161명, 1970년 에는7,144명으로 1970년의 인구 중가율은 16%에 이르는퉁급격하게 인 구가증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18세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인구 구성비와 인구밀도는 탄천 서쪽에 자리 잡은낙생면과대왕면이 높았으며,돌마면은내내 인구밀도가가장 낮았고 여자 인구가 남자보다 많았다.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세촌면에 속했던 단대동, 수진통, 상 · 하대원동, 태평동, 신흥동, 중동, 성남동을중심으로 인구 집중이 있 었으며, 이외 지역의 취락들은특별한변화를찾을수없다. 이로써 조선 후기 낙생면을량심 지역으로형성되었던 성남의 지역구조는 20세기 초 부터 그 중심권씨 서서히 세촌면으로 이통하다가, 1960년대 말 성남을 형성함으로써 왼전히 이동하였다. 20세기 초 이들 신흥 취락을 포함한 성남의 취락들은 여전히 농촌 경관을 띠고 있었고, 아직 상 · 공업에 기 반을 둔 근대적인 도시 경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성남출장소가 설치되는 1964년도에 도농업호의 비윷은84ν¢ 로압도적이었다. 성남의 도시 구조는 1990년대에 분당 신도시의 건설로 급격한 변화와 팽창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분당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 동안 33만 명의 인구가 전입하여 성남의 인구는 매년 37 뜰마지역의 역사와 문 화 윤 종 준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