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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마 마을의 인구변화 『여지도서(뺏地圖書@ 「광주방리(廣州功里)」의 기록을 황해 1760년경 의 돌마면 지역 인구를 살펴보면 돌마면은 상통리(上洞里)와 하동리(下 洞里)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중 상동리에는 2π 호 1428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남자가 672명에 여X 까 756명으로 여성인구 비율이 높다. 다음으로 하동리에는 218 호에 425명의 남자와 652명의 여자인구를 합하면 1,077명의 인구가 거주한 것으보 기록되어 있다. 상동리와 하통리를 합하면 495 호에 2, 505 명의 인구가 기록되어 있고 여성이 1,408명으로 남성인구 1,097명보다 36 많았음을알수있다.그리고세촌면의 대원동리(상대원,하대원)의 인구 는 90 호에 남자 159명, 여자 222명으로모두 381명의 인구가기록되어 있 하。토 문화층서 @ 돌마 마을지( 下) 고 여전히 여자인구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통계가 발달하지 않아서 상당수 누락된 인구가 많을 것 A 로 짐작되어 수치상의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같은 시기 짤은 방법으로 조사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당시 성남 지역에 해당되는 세촌면, 돌마면, 낙생면, 대왕띤의 인구 밀도의 비교는가능하다. 『여지도서』 에 나타난 4개 면의 인구수는 11,439명이고 서울로 편입된 지역을 제외한 현 성남시역에 맞춘 인구수는 9.922명이었다. 이 가운데 낙생면의 인규 L 가약 34 ν0 를차지하여가장많았고, 리 단위에서는세촌면 탄동리와복정리,대왕면둔촌리와사촌리의인구규모가컸다.탄동리는 1973년 시 승격과 함께 성남동 · 중동 · 태평동 · 신흥동 뚱으로 분할되 었고 일부는 수진동으로 넘겨주었는데, 오늘날 성남시의 득 중심가를 이루 고 있어 중심 마을로서의 전통이 가장 오래되었다. 돌마변은 상동리와 하동리 2 개리로편제되어 있어 리 단위별 인구수는가장많았다.하지만 인구밀도가 4 개 면 가운데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어서 취락 분포는 조밀 하지 않았을 것으로보인다. 앓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