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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않은 거사(居士)로충용(忠勇)한사람, 삼일운동당사에 창의(향義)한사람, 적난(械難)을또만나많이 분개(慣厭)한사람, 평화(平和)가 오니 고인이 된사람. 1990년 8월 15띨 대한민국정부(大韓民國政府)로부터 건국훈장(建國勳 章) 177호를 수여받았다. 묘소는 율동(떻洞) 산 2-1번지에 부인(夫A) 평택임씨(平澤林民) 임주 화(林柱和) 여사(女史)와 간좌(良坐)에 합조(合%)이다. 묘비문(훌陣文) 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名響敎授) 신용하(慣觸夏) 박사(博士)가 지었고 글씨는 석봉(石峰) 한호(韓護)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다. 묘비(훌碼)와 끼타석물(其他石物)은 2007년 11월 20일 성납문화원 . 성남 3· 1운동기념사업회 주최(主健)로 제막식(除幕式)을 하였다. 2[J06 년 3· 1절 기념식 날에는 성남 3· 1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제막식 및 제87 주년추념식을율동공원기념탑광장에서거행하였다. 181 한영복(輸永福, 1867년∼1935년) 휘(譯)는 영복(永福)이고 자(字)는 주언(周言)이며 호(號)는 유농(有農) 또는 남농(南農)으로 불렸다. 유 • 소년기(助 · 少年期)부터 학문(學問)에 심취전념(深趣專念)하였다. 환로(庫路)에 출사(出{士)하여 여띄 관직(官 職)을 거치고 대한제국말기(大韓帝國末期)에 통정대부(通政大夫) 강화 군수(江華那守)를웅 역임(歷任)하였다. 1910년 일제강압(日 帝彈壓)에 의(依)하여 망국(亡國)이 되자 조국독립 (祖國獨立)을 위짜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발각되어 1914년 일제총독 부( 日 帝總督府)에 의하여 지명수배(指名手配)가 되자, 곧바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인삼성CA參商)을 경영하여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조달(資 金調達) 등,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 조직 세거성씨 、 와 인물 한동열 앓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