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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향토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下) 한선명(韓善嗚, 1“6∼1728) 휘(譯)는 선명(善嗚)이고 자(字)는 세중(世重)이다. 선공감(續工藍) 감 역(藍投) 한항(韓元)의 차남인데 학문은 뛰어났으나 과거를 보지 않았고 지금의 후암판(훔岩洞)에 살면서 장안의 선비들과 고담준론(高談~浚論) 으로 일관하았다. 조카인 숙(滿)이 자기집에서 머물면서 심혈(心血)을 기 울여 공부하여 대망(大望)의 과거에 급제하고도 환로(술路)에 시입(始 入)조차 못하고 천연두(天然置)로 세상을 뜬 후 더욱 환로(庫路)를 멀리 하였다고전해온다. 묘소는 율동-(票洞) 산 9-1번지에 유인(補A) 전주(全州) 이씨(李民)와 임좌(王坐)에 합조(合%)이다. 한선장(韓善·長, 1“8∼1737) 휘(譯)는 선장(善長)이고 자(字)는 원경(元때)이다. 선공감감역(續工藍 藍投) 한항(韓元)의 삼남(三男)인데 벼슬에는 뭇이 없어 학문에만 열중 (熱中)하여 상당한 식견(識見)이 있어서 사림(士林)에 나가면 고매(高勳) 한 인품(A品)과 정도선행(正道善行)으로 세간(世間)의 찬딴(짧僅)을 받 았다. 정오품(正五品) 통덕랑(通德郞)에 보임(補任)되었으나 벼슬길에는 끝내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묘소는 율통(票洞) 산 2-1번지 청룡자락(춤龍自落) 경좌(康坐)에 공인 (옆A) 능성(陸城) 구씨(具民)와 합조(合~IS)이다. 공인(옆A) 전주이씨(全 州李~)는 율똥(要洞) 산 2-1번지 황시곡(黃料감)고개 우측(右測)에 지좌 (子坐)이다. 한급(韓波, 1722∼” 휘(譯)는 급(뼈)이고 자(字)는 여심(뺑深)이다. 가문(家門)이 학문(學 問)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경지(境地)에 이르러 학문의 집대 성을 이루어 사림(士林)의 신망이 두터웠다. 앓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