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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학문에만 심취하였다가 말년에 종삼품(從三品) 중직대부(中直大 夫)로 선공감(善工藍) 감역(藍投)으로 특별히 발탁되어 잠시 판로(富路) 에 나가 벼슬을하였으나곧사퇴하고향리(쨌里)의 문중서당(門中書堂) 에서 후학(後學)읍 가르치며 거가효우(居家孝友)로 살다가 일생을 마쳤 다. 묘소는 율동(票洞) 양지(陽地) 마을 뒷산인 산9 2번지(짧地)내 건좌(乾 坐)에 숙인(淑A) 덕수(德水)이씨(李民)와 합조(合%)이다. l?l 세거성씨와 인울 -한동열 한전(韓햄, 1609∼1688) 휘( 譯)는 전(웹)이고 자(字)는 치숙(治꿨)이다, 4 살 때에 부친(父親) 명 직(明直)이 일찍 돌아가서, 큰아버지인 한명욱(韓明歸)이, 어려서 아비 를 잃은 조카가 뜩은('I則隱)하여 친(親)아들처 럼 키웠으므로, 상당한 학문 (學問)의 집대성(集大成)을 이루어서 예도(禮道)에 뛰어나 원콩(原| 벚) 참 봉(參奉)을 지내면서도, 일찍 여윈 아버지를 생각하며 모친(母親)에게 효 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원근(遠近) 사림(士林)에서 효자(孝子)라고 큰 칭송(稱煩)을 받았다. 정구품(正九品) 종사랑(從{土郞)으로 종묘서(宗 l햄暑) 부봉사(副奉事 )를 지내다가 풍현(風腦)으로 불사(不任)하고 낙향 하여문중서당(門中書堂)에서글을가르쳤다고전하여온다. 수( 壽)가 80세에 이르자기로소(홈老所)에 들면서 대질특임( 大좋特任) 으로 정삼품(正三品) 당상관(掌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 사( 했知中樞府事)를 제수(除授) 받았다. 묘소는 율동(票洞) 산 9-2 자좌(子坐)에 숙부인(淑夫A) 순흥(順興) 안 씨(安民)와 합조(合~~)이다. 한선경(韓 善慶, 1653년∼1699) 휘(譯)는 선경(善慶)이고 자(字)는 세보(世南)다 생원 · 진사(生員 · 進 士) 양과(兩科)에 급제(及第) 후 성균관진사(成均館進士)를 지냈으나 자 좋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