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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辛苦)을 기다리지 않고, 또 다시 남쪽나라 찾아기누나 광해(光海) 13'건에 졸(후)하니, 증(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 (更費參判) 겸(暴) 경연춘추관사(經鐘春秋館事) 홍문관(弘文館) · 예문관 제학띠뽑文館提學) 세자사좌빈객(世子師左寶客)을 제수(除授)받았다. 묘소는 율동(票洞) 산 9-1번지 간좌(良坐)에 증(體) 정부인(貞夫A) 전 의이씨(全義李民)와쌍분(雙樓) 합조(合%)이다. 167 세거성씨와 인물 ·한동열 한명욱(韓明閒, 1567∼1652) 휘(譯)는 명욱(明閒)이고 자(字)는 욱재(助歲)이며 호(號)는 윷헌(票幹) 이다. 명종(明宗) 22년(1567)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호학하여 정송강(鄭 松江) 성우계(成牛演)에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다. 선조(확祖) 39년 (16cX5)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성균관 장의(成均館 掌誠) 때에 계 곡(漢씁) 장유(張堆)와 율곡(票용)과 우계(牛演)의 무고소변(짧좀陣辯)은 천하명문(天下名文)으로 사림(士林)과 세간(世間)의 찬탄(讀應)을 받았 다. 문음(文陰)으로 입사(시士)하여 어모 ; ~군(響悔將軍) 충무위(忠武衛) 사과(司果) 지내다가 선조실록편수(宣祖實錄編修) 때에 기주판(記注官) 으로참여하였다. 광해(光海) 원년(元年) 11월 3일에는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講)를 거쳐 서 광해(光海) 3년 7 월 3일에는 호조좌랑(戶費住郞)이 되었고 팡해(光海) 6 년에는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及第)하여 7 월 3일에 예조좌랑(禮暫 住郞)이 되었다가 광해(光海) 7년 1월 23일에 세자시강원사서(世子待講 院司書)로 옮겼다가 3월 26일에 시간원정언(司課院正言)이 되었다. 6 월 8일에는 사헌부 지평(러憲府 持平)이 되고 9 월 28일에는 정사품(正四品)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승차(睡差)하여 사헌부(司憲府) 장령(筆令)이 되 어 두 계급(階級)의 승진(睡進)이 되었다. 광해(Jt海) 10년 4 월 13일에는 정삼품(표三品) I협}관(掌下官)인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승차健差)하여 좋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