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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향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 지( T) 묘는 정부인(貞夫A) 안동김씨(安東金民)와 율동 산 28번치에 유좌(펌 坐)이다. 안처선(安處폼, 生沒未詳) 휘(譯)는 처선(處善), 자(字)는 선지(善之), 생부(生父)는 침(!뽕)이다. 성 종 23년(1492)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연산(斯山) 3띤(1497)에 문 과급제하였다. 연산 6년 5월 29일에 정구품(正九品) 종사랑(從↑士郞)으로 홍문관 정자(弘文館 正字)에 보임되었다가 동년 10월 5일에 홍문관 전경 (弘文館 典經)..S~ 후 경연에 나가 연산에게 직언한 내용은 “이른바 경연이 라는 것은 비단 강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강론하되 온화한 안 색과 띠뜻한 말로 고금의 치란(治亂)과 득실을 되풀이 하여 웃으면서 논 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뇌정(雷靈) 같은 임금 앞에서 누가감히 할말을다하겠습니까?신이 근일에 여러 번 경연에 시강하였는데 진강 (進講)한 사람이 비록 논계(論량)한 것이 있어도 으레 모두 대답하지 않 으시고또묻지도않으시니 논란하는본의에 어긋납니다 또봄과가을 에 강무하는 것은 예부터 전해 오는 일이지만 사냥(打圍, 짐승을 몰이하 여 잡는 사냥방법)은 본래부터 다스리는 일에 관계가 없는 껏입니다. 지 금 천변(天變)이 있는 것도 역시 천심(天心)이 전하를 인자하게 사랑하여 먼저 꾸짖고 경고하는 것입니다”하니 왕이 이르기를 “지금 한 말은 당 연하다. 그러나 천변이 어찌 사냥하는 일 때문에 초래되었겠는가?”하였 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다. 연산7년 1월 20일에는정팔품(正八品)통사랑 (通↑土郞)으로 승;차하여 홍문관 저작(弘文館 著作)이 되어 경 연시강관(經 鐘待講官)을 계속하였는데 이날의 실록의 기록은 ‘안처선관 천성이 순 정하고 지조가 확실하여 세쇄(細趙)한 일에 구애되지 않고 대인(大A)의 기상이 있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연산 8년 7월 14일에 정칠품(正七 品) 가공랑(嘉功郞)으로 승차하여 경연설서(經鐘設書)가 되어 임금을 지 근(至近)에서 모시게 되었다 연산 11년 6월 2일에는 시를 지어 바치고 .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