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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일찍이 총명이 절인하고 기개가 비상한 유학자로서 관향은 전주요 자는 헌표이시고 호는 정회이시며 조선 제2대 정종대왕의 9남인 석보군의 14대 후예시다. 조선조말(1841년 4월 10일 - 1909년 2월 22일) 중원군 신니면 선당리 유도의 가문에서 출생하셨으며 당시 나라의 형세는 열강들의 외세로부터 우리 국토 탐닉이 극심하였고 안으로는 봉건적 사회질서로 하여금 일대 변혁을 요구하는 전환기였다. 또한 조정 관속들의 부패와 학정은 민생을 참담케 하였으니 이에 의분을 느끼신 선생께서는 제도창생을 위한 개혁사상의 길을 택하시게 되었다. 또한 선생께서는 인간평등에 기초한 민본주의와 인권주의를 주창하시고 천심은 곧 민심이라는 인내천 철학과 후천개벽의 동학사상을 실천하신 의인이요 사상가이셨다. 또한 선생께서는 출임에 연연치 않으신 혁명가이셨고 사회제도의 계급철폐와 토지제도의 개혁 등 민권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선각자이셨다. 선생께서는 1882년에 동학에 입도하시어 1892년에 접주를 하셨으며, 1893년 충주 접주, 1894년 괴산 접주, 그리고 1897년 괴산접주에 재임되시었고, 1900년 4월에 음 ○접주를 비롯하여 1905년 정월에는 충청도 수접주의 대임을 받아 봉건세력에 저항하고 근대사회 제도를 위한 개혁운동의 선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