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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天地人)은 하나,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이곳 보은은 해월 최시형이 조선정부의 탄압을 피해 몸을 숨긴 채 동학(東學)을 전파했던 중요한 근거지로 1893년 3월 전국에서 온 수만 명의 동학교도들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기치를 들고 반외세 반봉건 정치집회인 보은취회(報恩聚會)를 열었던 곳이며, 북접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최대 항전인 북실전투 때 수많은 농민군이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통한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 경제 변화와 민중의식의 성장으로 신분제를 비롯한 사회체제가 심하게 흔들렸다. 특히 19세기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장 개척에 혈안이 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국권(國權)이 위기에 처했고 세도정치(勢道政治)의 무능과 부패로 국가제도가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들의 억압과 착취가 극에 달해 백성들의 삶이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이에, 참다 참다 못해 일어난 농민들의 항거가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라 안팍의 위기가 날로 높아가던 1860년, 경상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는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과 함께 마음속에 신령한 하늘을 모신 존재인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을 창도하였다.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척양척왜)斥洋斥倭) 기치를 내세운 동학은 신분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근대적 인권울 주창(主唱)하여 백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나 조선정부는 이를 철저히 금지하고 탄압했다. 급기야 최제우는 1864년 대구에서 처형되고, 최시형에 의해 동학은 이곳 보은에서 다시 꽃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