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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과 태평천국운동, 과거․현재․미래를 논하다 114 <동학혁명모의탑> 전북 정읍시 고부면 <만석보유지비> 전북 정읍시 이평면 워지게 되었다. 이 탑의 건립은 이때까지만 해도 동학란으로 불려 진 이 사건이 '혁명'으로 격상 되는 계기를 가져왔을 뿐 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전국 각 동학전적지에 농민군 후손이 나 천도교 측에서 적극 나서 기념탑 등 조형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황토현에 건립된 '갑오동학혁명기념탑'건립을 위한 재정은 주로 각계의 성금을 통 해 마련했지만 당시 형식적이나마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정략적 계산에 따라 공화당에서 일부 성금을 냈으며 1963년 10월 3일 개막식 행사에 박정희 가 참석하여 기념사를 했다는 이유로 이 기념탑이 박정 희정권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말은 잘못된 말임을 이 기 회를 통해 밝혀둔다. 사발통문(沙鉢通文)이 발견된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는 사발통문 서명자 후손들에 의해 '동학혁명모의탑(東 學革命謀議塔)'이 건립되었다. 현재 널리 알려진 사발통 문은 1893년 11월에 고부 송두호(宋斗浩)의 집에서 전봉 준․최경선(崔景善) 등 20명이 결의사항과 함께 사발모양 으로 둥글게 서명된 문서로서 1968년 12월 4일 신중리 에 거주하는 송기태씨가 신문에 발표하여 처음으로 세 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견자 송기태는 내용의 중요함을 알고 통문에 서명 한 20인의 후손을 찾아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하여 마침 내 동학혁명모의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후손들 이 쌀 1가마씩 거출하여 1969년 12월 1일에 모의탑을 세웠다. 이 시기에는 전국 유일한 동학관련단체인 갑오동학 혁명기념사업회의 활동이 단연 돋보였다.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건립이 뜻대로 이루어지자 정읍을 중심으로 1967년 30여명의 민간인이 모여 최초의 동학관련단체 인'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이듬해부터 기 념제를 개최하였다. 기념제 성공에 고무된 사업회의 활 동은 만석보유지비(萬石洑遺址碑) 건립(1973. 5. 11)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영향을 마침내 충남 공주 우금치 고개에 1973 년 11월11일에 동학혁명군위령탑(東學革命軍慰靈塔)이 세워졌다. 공주 사람 이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