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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과 태평천국운동, 과거․현재․미래를 논하다 112 기념물 장소건립연도 군관정지환순의비문(軍官鄭志煥殉義碑文) 충남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1902 모충단(慕忠壇) 충북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1904 갑오토비사적비 [甲午討匪事績碑, 박봉양비(朴鳳陽碑)] 전북 남원시 운봉읍 갑오전망장졸기념비(각) [甲午戰亡將卒紀念碑(閣)] 충북 청주시 당산1905 (2)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2단계(1910∼1945)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각종 기념행위나 기념물들을 억압하고 파괴하 였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기속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은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었다. 박은식(朴殷植)은 우리나라 평민(平民)의 혁명이란 표현을 썼으며, 김상기(金庠基)는 민중의 혁명사상이 나타난 조선민중운동사상에 일대 선구를 이룬 것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비록 동학란이라는 용어사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라도, 폄하된 인식을 깨고 민중 혁명 운동의 선구로 평가한 것은 큰 진전이었다. 이렇듯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태동과는 달리 이 시기에 조성된 동학관련 기념물은 거의 없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기념물은 충남 홍주군 홍주향교 앞에 '칠의비(七義碑)'를 들 수 있는데 이는 1894년 10월 28일 밤 홍주향교를 지키다 동학농민군에게 죽은 7명의 유 생들의 순절을 칭송하기 위해 1912년 지방유림이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3)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3단계(1945∼1950년대) 해방 이후 50년대 후반까지 동학농민혁명 관련해서는 사회주의계열 학자들의 연 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청원의 "갑오농민전쟁의 성격과 그 력사적 의의" (≪력사 제문제≫, 1948), 전석담의 "이조 봉건사회의 총결로서의 동학농민란"(≪조선경제사 ≫, 1949)이 이 시기의 대표적 논문이다. 이청원이 사용한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용어 는 지금까지 북한학계의 '1894년 사건'에 대한 공식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첫 번째 기념행사는 천도교 차원에서 이뤄졌는데 해방 후인 1947년에 북한 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시작되었다. 이때의 기념일은 『천도교창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