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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5월31일 목요일 12 (제137호) 기획 5월 5일어린이날,8일어버이날,15일스승의날,21일 부부의날인5월은가정의 달이면서효를 되돌아보는 달이기도한다.어머니를 즐겁게해드리기 위해67세의노구(老軀)를이끌고과거에응시하여급제한고직당공박영철과그의8대손경원은부모의병환 에자신의손가락을깨물어피를내어드리 고,볼기살을뜯어약과함께시탕(侍湯)하는일은고금에도드문일로서이들의효행은21세기를살아가는현 대인들에게삶의교훈이될만하다. 휘는 영철(永喆) 字는 숙명(淑明)으로 고직당 (孤直堂)은 호(號)이다. 밀성대군의 14세(世)인 좌 상 공 휘 춘 ( 椿 )의 7 대 손 송 고 공 휘 홍 정 (洪 禎 ) 과 숙부인 창원정씨 사이에 1566년(명종 丙寅)에 전남창평현(현담양군고서면)에서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뜻을 세워서 동작하고 그침과 기 국(器局,도량과 재능)이 성인(成人)과 같아 따르 지 않은 이 없었다.어릴 적 어머니 숙부인 창원정 씨를 잃어 거상을 잘못하였다하여 자람에 미쳐 추복(追服)의 예(禮)를 행하여 묘소(墓所)에 움 막을 짓고 죽 먹으며 3년의 여묘(廬墓)를 하고 새 벽과 어둠에 반드시 사당에 참례하여 심한 병이 아니면일찍이폐지하지않은일이없었다. 광해조에 소인배들이 정권을 잡아 윤리(倫理) 가 퇴폐하니 이에 개연히 탄식하며 가로되 「이 어 찌 사자(士子)가 출신(出身) 할 시기리오.」하고 인하여 과거를 폐하여 자취를 감추어 장치 종신 (終身)하려 하였으나 광해군의 폭정으로 더욱 혼 란해져 관학(館學)의 제생(諸生)들과 더불어 창 의(倡義)하여 항소하여 죽음을 무릎 쓰고 강력히 간청하였다. 특히 후학양성에 매진하면서 지역의 유풍을 크 게 진작하여 창평지역이 전남지역 유풍의 진원지 라 할 정도로 세(勢)가 커진 것 또한 고직당 선생 의영향이컸다할것이다. 그리고 선생은 계대부인(繼代夫人, 繼母) 광산 김씨 봉양에도 한 치 소홀함이 없었다. 그러나 계 모인 광산김씨는 아들이 뛰어난 학문에도 불구하 고 과거에 응하지 않음을 탄식하며 매일 걱정이 가득한 세월을 지내니 고직당공은 어머니에게 그 연유를 묻자 ‘내가 지금 지식들이 극진히 보살펴 육신은 편안하나 즐겁지 아니하다. 다른 집은 자 식들이장성하여과거에응시하여높은 관직에 올 라 부모를 즐겁게 하는데 나는 그런 즐거움이 없 으니어찌즐겁다하리오’하니어머니에게근심을 끼쳐드린 것 같아 크게 자신을 책망(責望) 할 즈 음 인조(仁祖) 개옥(改玉)과 함께 어머니를 동생 진재공(휘 준철)에게 의탁하고 진사시에 응시하 여 3등(三等) 7위(37/100)에 합격 진사가 되어 효 행으로강릉참봉과사옹시봉사에제수되었다. 그리고 인조(仁祖) 11년(1633) 계유(癸酉) 식 년시(式年試)에 응시하여 문과(文科) 병과(丙 科) 20위로 급제하여 기조(騎曹)와 병조(兵曹) 를거쳐승문원교검이되었다. 그리고 70세이던 선생은 80세의 고령인 계모의 봉양을 위해 상소를 올려 지방관인 영춘현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치적(治積)으로 통정대부(通政 大夫)의정(旌)을더하였다. 선생은 예(禮)에 밝아 임금모시는 사당(香室)에 들어 영녕전(永寧殿, 종묘 안에 따로 만든 사당)의 덕종과 예종의 위차(位次)와 태종의 휘호(彙號) 등 잘못된 규범을 경연을 통해 바로잡았으며,억울 하게누명을쓴사람을보면즉시상소하여많은사 람들을 구제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위민정신이 투철하였다. 특히 강상(綱常)의 법도를 중시하고 이를근본으로하는정치,간신을배척하는일등을 담은상소문을올렸으며1640년8월에는인조임금 이올바른정책을펼수있도록만언소를올리니너 그럽게 비답하시고 초피(貂皮)와 이모(耳帽)를 하 사받았다.(상소문 만언소 참조) 1647년 정침(正寢)에서 영면(永眠)하니 향년 이82세이다. 선생의 삶은 도(道)와 충(忠)과 효(孝)를 할 따 름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예을 못 다하여 추복(追服)하여 예를 다하였고, 아버지 상례에도 시묘 3년을 마치는 효를 다하였고,광해 조에 이르러서는 상소하여 윤리를 두터이 하는 충성에 극진하고 군자(君子)의 도(道)를 다할 것 을 극간하였고,인조조에서는 예(禮)를 근간으로 하는 국정을 펼 것을 주청하는 만언소가 심금을 울린다. 선생이 남긴 많은 유묵이 종가(宗家)의 화재로 전해지지 않고 다만 고직당집이 전해지고 있다. 통훈대부 행 병조좌랑신 박영철(朴英喆)은 황 공하게도 머리를 조아리고 백배(百拜)를 하면서 주상전하(主上殿下)께 글을 올립니다.엎드려 생 각하니 신(臣)은 궁벽한 호남에 사는데 늙고 병 들어 장차 죽음에 이르렀으니 다시는 임금님을 뵈올 수 없으므로 한 말씀드리고서 전하(殿下)의 뜰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신(臣)은 엎드려 생각 하니 전하는 성스러운 조상(聖祖)에 훌륭한 자손 으로서 떨치고 일어서서 난(亂)을 헤치고 정도 (正道)로 돌이켜서 도탄(塗炭:고통)에 빠진 백성 을 건지시고 엎어진 종사(宗社:국가)를 붙들어 나가니 온 국민들이 중흥(中興 : 나라를 다시 세 움)시킨 임금이라고 축하를 하고 아울러 상종주 선(商宗周宣 : 상종 상나라 임금. 주선 주나라 선 왕)에 같이 견주었는데 어찌 二十年도 안된 지 금 전하(殿下)께서 몸소 패란(敗亂)한 화(禍)를 볼 것을 헤아렸을까. 지난날에 전하께서 중흥했 을 때 천위(天位 : 임금의 자리)를 보배로 여기 지 아니하고 오묘(五廟 : 시조·고조·증조·조· 부)의 사당이 허물어진 것을 민망히 여기셨고 임금의 자리를 얻고 잃는 것(得喪)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삼강(三綱 : 군위신강·부위자강·부위 부강)이 멸(滅)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장차 깊은 못에 빠지는 것 같이하고 삼가고 경계하여 잠시 잠깐이라도 홀 만함이 없어 도려내고 씻어버리며 바르고 새롭 게 하여 천기(踐祈 : 등극)한 후로 근심을 멈추 지 아니하여 날로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해서 조금도 게으름을 용납하지 아니하니 천심(天心 : 민심)이 능히 편안하고 여정(輿情 : 여론)이 즐거워하니 이것은 전하께서 중흥한 성주(聖主 : 착한 임금)가 된 것입니다. 신(臣)은 十年이후 로 백성들의 큰 공을 알지 못했으니 아니하여 신 은 두려워하건대 다시 변화하지 아니하여 그럭 저럭 날이나 보내고 때(時)가 지난즉 비록 좋은 때가 왔다 해도 마침내 옛날과 같은 업적에 미치 지 못할까 합니다. 슬프도다. 전하께서는 어찌 스스로 알지 못합니까. 전하께서 보위(寶位 : 임 금의 자리)에 나아간 후 중년이 초년(初年)만 못하고 지금이 중년(中年)만 못해서 오래 갈수 록 더욱 떨치지 못한즉 국민들이 전하를 어떤 임 금이라 하겠습니까. 슬프다. 일국(一國)이 우러 러 보는 자는 오직 임금이고 적자(赤子 : 국민과 같음)가 사모하는 자도 또한 임금에 있는지라 귀신이 맡은 것도 오직 한사람인 고로 재앙과 상 서가 자주 변하는 것도 또한 한사람에게 달린 것 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한갓 세금 을 감(減)하고 수라상(임금의 진지상)에 반찬 을 철거하는 것으로 우근(憂勤 : 우려와 근심)을 삼지 말고 오늘날에 입심(立心)이 중흥할 처음 과 같지 못함을 생각해서 한갓 재앙을 만나면 구 언(求言 : 백성의 소리를 들음)하는 것으로 정성 을 다했다 하지 말고 오늘날에 정사가 열성(列 星 : 성군)의 다스림을 준수함이 없는가 생각할 것 이라. 전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조야(朝野 : 조 정과 지방)를 방문해서 해(歲)가 흉년인즉 문득 숨김없이 상소(上疏)하라는 교서를 내리고 하 늘로부터 전염병이 유행한즉 반드시 어진 이를 천거하고 적임자를 선택하라는 성지(聖旨 : 임 금의 뜻)를 내려서 그 구원하는 것을 듣고자 한 것이 이제나저제나 조정에서는 나라 걱정을 자 기 집 걱정과 같이 충성함을 보지 못했고 백성들 사이에는 임금 보기를 자기 아비 보는 것과 같이 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무슨 일인고 슬프다. 구 언(求言 : 상소를 구함)을 하되 말을 한즉 사심 (私心)에 끌려서 좋아하고 미워함(好惡)이 있 은 즉 말의 쓰임이 되지 아니하고 구언(求言)을 하되 말이 곧은 즉 욕심이 마음에 동(動)한즉 말 이 충성하지 못한 것이라. 수년이래도 전하께서 한 가지라도 좋은 말을 들은 즉 칭찬하면서 상을 주고 한 가지라도 곧은 의론을 들은 즉 넉넉히 진언(眞言)한 선비에 비답(批答)을 준즉 적은 은혜가 아니라 만행(萬幸)인 것이라. 전하께서 덕(德)을 닦는데 부족함이 있은 즉 신(臣)은 도 와줄 바를 알지 못하나 만약 구언(求言)한다는 말만 있고 용언(用言 : 말을 들어줌)하는 실상이 없은 즉 이것은 전하께서 다스림을 구하되 앞으 로 나아가려고 하면서 뒷걸음질하는 것과 같으 니 신은 가(可 : 옳은 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엎 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름(名)을 생각하 고 실상을 힘쓰고 있으나 오직 그 실상만 힘쓸 것이 아니라 먼저 도(道)와 심(心)을 구할 것이 라. 슬프다. 근자에 해마다 여름에는 별이 뜨겁 고 가을에는 서리가 일찍 내리니 하늘이 미워하 고 위엄을 나타내 가망이 없는 것 같으나 그러나 하늘이 우리 전하께 꾸짖음을 보이는 것이 몇 달 몇 해가 지났는데 그치지 않은 즉 실상이 하늘에 있는 상제(上帝)가 인군을 사랑함이 버리지 않 은 뜻이라.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한 걸음씩 물러가 차차로 편안한 것으로 쉬는 계 획을 하지 말고 늘 사람(관원)을 갈고 법을 고치 는 것으로 능히 처음에 생각을 회복하여 격려를 할 것이라. 지금 전하께서 뜻과 생각을 새로이 하고자 할진대 우리 조종열성(朝宗列聖 : 착한 조상)과 옛날 성제명왕(聖帝明王 : 착하고 훌륭 한 임금)을 법 받는 것이고 옛날 임금과 여러 성 현들의 마음과 다스림을 보고자 할진대 우(虞)· 하(夏)·상(商)·주(周)의 글과 아송(雅頌 : 시전 의 편명)의 시를 숭상하는 것이 족(足)할 것이 다. 전하께서 이 이경(二經 : 商周之書雅頌之詩) 을 취해서 생각을 딴것에 두지 않고 잠기고 빠져 반복을 하며 몸을 살핀즉 전하의 덕(德)이 순박 (純駁 : 좋고 나쁨)한 것과 전하의 정사(政事)에 득실(得失)을 다 말하지 아니해도 알 것이라. 엎 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살펴 내심 판 단하되 얼룩진 것과 실정이 있은 즉 고칠 것이고 이미 순수하고 얻음이 있은 즉 힘씀을 더하여 널 리 경악석유(經握碩儒 : 경전에 능한 선비)를 맞 이하여 더불어 의논하고 생각을 다하여 엄연하 게 요순(堯舜)의 군신(君臣)과 같이하여 좌우 에서 경계하고 한 자리에서 우불(찬성과 반대) 을 하여 허문(虛文 : 헛수작)을 일삼지 말고 자 기의 마음을 속이지 아니한 즉 종사(宗社 : 국 가)가 행복할 것이고 백성이 복될 것이라. 신은 또 가만히 생각하니 신(臣)의 가슴속에 늘 민망 한 것이 있으니 전하께서 나아가 한참 젊었는데 자주 미령(靡寧 : 편치 못함)한 근심이 있다하니 이것은 여러 가지고 불쾌한 것이 성상의 마음을 흔들고 사기(邪氣 : 요기와 같음)가 범접함이 아 닙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 조상님들과 옥황상제가 점지해준 것을 생각하여 지극히 크 고 지극히 굳센 기운을 옥체(玉體 : 임금의 몸) 에 충만하게 하고 천지를 가득하게 할 것이니 그 기운을 씩씩하게 한 즉 질병과 사기가 정도를 침 노함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그 마음이 차 있은 즉(實其心) 외물과 사의(外物邪醫)가 얻어들어 오지 못하는 것이라. 논어(論語)에 말하기를 " 공자가 삼가는 바는 재계와 전쟁과 병(齋戰病) 이라" 했으니, 지금도 전하에게 바라는 것이라. 신은 다시 말하노니 기운을 씩씩하게 하고 마음 을 가득 채우는 것을 먼저 할 것이라. 슬프다. 우 리 전하는 질병이 없기를 바랄 것이고 공경(公 卿 : 정승판서) 및 모든 관원들과 곤수(困帥 : 한 지역을 맡은 장수)나 모든 장수들로 하여금 마 음과 몸을 게을리 아니하도록 할 것이고 전하께 서는 먼저 밝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시고 조정에 서는 다음으로 정직과 사사로움이 없는 정사를 베풀어서 자기를 자랑하고 승진을 구하는 무리 로 먼저하고 정직하고 청렴하고 부끄럼을 아는 사람으로 뒤함이 없은 즉 현재(賢才)가 등용이 되고 간사한 무리가 멀리해서 장상(將相 : 장수 정승)이 적임자를 얻을 것이고 수령(守令 : 군 수)이 탐욕함이 없을 것이고 재앙과 유행병이 스스로 사라지고 천의(天意 : 천심)가 돌아오고 풍우(風雨)가 순하고 민생(民生)이 살아날 것 이고 군정(軍政)에 기무(機務 : 군사관한 일)와 응변(應變 : 변란)에 대처하는 방법이 조치하는 중에 처리되는 一事니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 서는 신경을 쓰고 살피소서. 슬프다. 지금 신의 말이 사정(事情)에 소홀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음에 거슬림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 나 다시 「교화를 일으키고·풍속을 착하게 하고· 폐단을 고치고·정도에 돌아가는」몇 가지를 전하 를 위해 힘써 말하겠습니다. 지금 신이 만약 참소 와 기롱(譏弄)을 두려워 성명(聖明 :전하와 같은 말)앞에 다 말하지 아니한 즉 이것은 신하된 자로 서 할 말을 반드시 하는 도리를 못한 것이라.맹자 (孟子)가 말하기를 「인언(仁言)이 어진 말을 사 람에게 깊이 들려줄 것 같지 못하다」했으니 이것 은 인후(仁厚)한 말이 사람 사랑하기를 실지로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일렀고 또 말하기를 「잘 가르쳐 민심(民心)을 얻으라」했으니 교(敎)는 도덕과 재계와 예의(道德齋禮)를 말했으니 민심 을 얻은 자는 부모를 버리지 아니하고 임금을 뒤 로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예의염치(禮義廉恥)의 가르킴을 이름이 아닙니까................이하 생략 숭정 十三年경진(서기一六四○년)八月 【비답(批答 : 상소에 대한 답)에 말하기를 네가 올린 글을 살펴보니 네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 를 근심하는 정성이로다. 소(疏)에 말이 격언(格 言 : 지당한 말)이 아님이 없으니 내가 마땅히 유 념해서 채용하리라 하고 이에 전하기를 나로 인 하여 심란한 말이 절대로 없고 지난날을 생각해 서 말했으니 항상 부끄럼을 풀었노라. 지금 소 (疏)를 보니 그 뜻이 자못 곧고 또 연궐을 생각하 는 정(情)이 있는 듯해서 두 세 번 읽어보니 깊이 가상(嘉尙 : 아름다움)함이 있으니 이제 초피(貂 皮 : 털옷)와 이엄(耳掩)·반비(半臂 : 의복 종류) 를내려보내특별히주면서나의뜻을표하노라.】 공(公)의 휘는 경원(慶元)이고 자(字)는 경보 (敬輔)이다. 증(贈) 통정대부 좌승지 겸 경연참 찬관 휘 천곤(天崑)의 아들로 1796년에 전북 순 창에서태어났다. 효성이출천(出天)하여어려서부터부모님섬기기 를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리는등아침저녁으로정성스럽게보살펴왔다. 나물 캐고 낚시하여 맛있는 음식이 떨어짐이 없게 하였고, 비록 집안에 세세한 일이라도 반드 시 고(告)하여 자유로 아니하고 여력(餘力)으로 학문에힘써경사(經史)를널리통(通)하였다. 아버지 상(喪)을 당하여 통곡의 슬픔과 수렵하 는 례(禮)에 고인(古人)의 능하지 못한 바를 실 천하니이웃사람들이칭찬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므로 지극히 비통하게 여겼 고, 능히 편모(偏母)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으 나 어머니가 모진 병을 만나 위태로워 백약이 무 효로 생명이 위태로워 곧 손가락에 피를 내어 드 리니 금방 회생하여 그 후 10여년을 살다가 또 병 이 재발하여 곧 임종하려함에 볼기 살을 베어 약 과 같이 드리니 5일간 명(命)을 연장하였다.상사 (喪事)를 당하여 상복을 입고 맨밥을 먹으며 3년 을 피눈물로 지냈다. 그리고 언제나 기일(忌日) 에는 호곡하여 슬퍼하기를 초상시와 같이 하였으 니이는종신토록부모를사모한것이다. 이에 지방 유림들이 상신(上申)하여 1905년(고 종41) 정려가 내려지고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 의금부사에증직되었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하였다. 효경 에선 천자가 되어야 비로소 지극한 효를 할수 있 고, 효를 실천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 지되돌아보고싶다. 명심보감 효행편을 소개해 보면 ‘효도하고 순 종하는 사람을 또한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식을 낳고, 오역한 사람은 오역한 자식을 낳을 것이니 믿지 못하겠으면 처마끝의 낙수를 지켜보라 방울 방울떨어져내리는데어긋남이없을것이다.’ 효자집안에서 효자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 은 부모의 효행을 본 받는다. 효순한 사람은 형제 간에 우애하고 친척간에 화목하고 나라와 사회에 충성할줄아는사람이다. 요즈음 어른 셋만 모이면 ‘요즈음 젊은 애들은 버릇이없다’,‘우리가죽고나면제사도지내지않 을 것이다,’ 등 아이들 걱정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편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들의 행동 을 그대로 보고 따르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행 동이 그렇게 만드는 것을 모르는 어른들의 잘못 이다. 그러고 보면 고직당공이나 그의 8대손 휘 경원 이 실천하는 효(孝)는 눈여겨 볼만하다. 조선시 대는 회갑을 넘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67세이 면 상노인으로 자기보다 10살 더 드신 계모를 즐 겁게 해드리기 위해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아가 조정에서 예(禮)와 도덕(道德)을 강론하고 충 (忠)을 행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휘경원의효는대를이은효(孝)이다.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기가 제일 어렵다고 하였 다. 그러나 효를 실천함으로서 자식들에게 모범 을보인다면사람답게살았다할것이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고직당공박영철선생과8대손경원의 효(孝)이야기 선조 유지를찾아븣 고직당공박영철의생애 고직당박영철묘소-광주광역시북구망월동산34번지(쌍가매). 효자박경원의정려-전북순창군팔덕면청례리마을입구에있다. 만언소(萬言疏) 고직당집 효자박경원 박경원의정례1905년에내려졌다. 맺음말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