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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승(1866~1927) 삼일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 호 자암 본관 밀양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아래 배치에서 성장했는데 1910년대에 산외면으로 이사하여 이 고장 인물이 되었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25세때 동학 2대교주인 최해월의 감화를 받고 입교 수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의 대열에 참여한 사실이 있다. 동학혁명이 실패한 이후로도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에서 계속 활동하여 도사 중앙총부 감사직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919년 주권회복을 위한 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남에 따라 손병희와 함께 거사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 되었다. 독립선언문을 선포한 직후 일제 관헌에 체포당하여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재판장에서 독립을 해야할 이유가 무었이냐는 재판장의 추궁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독립국민이었다. 독립하지 않고는 안된다고 당당히 주장하였다. 1927년 62세로 별세하였으며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