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page


261page

殉敎紀念文(순교기념문) 순교자 조상학(趙尙學) [1877-1950] 장로교 목사 1877년에 전남 승주군 송광면에서 출생하였다. 광주에서 학습을 받고 2년 후 1909년 벨(Bell Eugene)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그는 개인적으로 전도에 열심을 다했다. 1911년 광주의 숭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원전도를 쉬지 않았고 1916년 순회 전도사로 부름을 받아 각 지방을 전도하는 중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1923년 졸업하고 그해 전남노회에서 순천노회로 분림하면서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아 광양읍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최초의 총대가 되기도 하였다. 1930년에는 율촌교회 1940년에는 경남하동읍교회 1946년에는 여천 덕양교회(현 주향교회)에 시무하였고 1940년 순천노회 청년조직 단체인 원탁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는 순천 중앙교회에서 청년들과 신사참배에 불참 항거할 것을 뜻하고 신앙사수를 결의한 조직단체였다. 민족적 사상이 좌우로 갈려 편할 날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던 중에 6.25사변으로 남단 이곳에도 공산당의 침략이 소용돌이쳤다. 제직들의 강한 권유로 피신을 종용했으나 교회를 사수하므로 여수 내무서에서 보낸 3명의 서원에게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예수사랑을 잃지 않았고 70일 동안 감옥생활 후 미평공동묘지로 끌려가 함께 동역하던 손양원 목사와 같은 장소에서 순교자의 영광에 동행하고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므로 1950년 9월 28일이더라. 후대의 성도에게 고귀한 사명감을 남기셨다. 주후 2008년 11월 11일 기록 발췌 라양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