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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노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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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성주 이씨 이름은 교재니 창원군 대실 사람이다. 기미 후 광복운동을 계속하다가 적의 부산법원에 끌려 차 년 반의 체형을 치르고 계유 이월 일에 구끼다 이제 그 사행의 줄거리를 추리면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으로서의 활약은 곧 삶을 잃게 한 사건이지만 이에 앞서 독립선전문 인쇄 산포로 대구서 일년 징역 상해 가던 도중 봉천서 석달 구류 고학생 갈돕회 소인극 단장으로 지방서 때때의 검속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난 해 정해까지 통산하여 겨우 나이 사십 칠 세 그 구낌이 얼마나 통석한가. 그러나 선배의 피와 정신을 미천으로 거두어진 오늘의 승리는 열사에게 보다 크고 보다 긴 수명을 부여했나니. 국권이 확립됨에 따라 가족인 인격교양에 힘쓴 어머니 김씨 농토를 주려 자금에 보탠 아버지 봉화 임시정부 지령서 기타 문서를 살깊이 감추어 실적을 살려온 아내 홍씨의 성가가 드러나고 전 주석 김구와 딸 태순 봉사손 정순을 어루만져 주던 일이며 유지 및 학생들이 손 뫃아 숩실산 새 무덤과 비를 이룩한 것이다. 징거의 토막 토막이라 어찌 한가지 우연함이 있으리오. 열사 젊어서 한문학을 닦아 달 아래 시경 읊는 소리 삼린에 울려짐은 범물 아니더란 말로 유명하거니와 절개를 상징한 죽헌 시호도 그때부터 많이 불리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