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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은 경남 진해시 웅천동에서 출생하시다(부친 주현성 장로와 모친 조재선 집사의 4남3녀 중 4남). 고향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남강 이승훈 장로와 고당 조만식 장로의 지도 아래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기독교 신앙교육을 받으시다. 마산 문창교회의 김익두 목사 부흥성회에서 중생체험과 목회자 소명감을 느껴 192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신 후, 1925년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시다. 1935년 9월 평양신학교에서 개최되었던 선교 50주년 기념 부흥사경회에서 '예수를 따라서 일사각오(一死覺悟), 남을 위하여 일사각오, 부활의 진리를 위하여 일사각오'라는 설교를 통해 죽음으로 일제의 압박에 항거할 것을 주창하시며 일본 신사 참배 반대와 독립운동을 하시다. 1938년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일경에 체포되어 총 5년 4개월간 평양형무소에서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셨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옥고를 치르시다가 해방 1년전인 1944년 4월 21일 금요일 밤 9시 30분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으소서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교하시다. 주기철 목사님은 목회자이시자 독립운동가로서 국민적 존경을 받으시는 한국 기독교역사상 위대한 순교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