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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림 목사님은 1888.11.27 경남 기장읍 죽성리에서 출생하시다. (부친 최영석 모친 박효심의 5남 2녀 중 장남) 가난한 가정에서 한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시고 1910년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여 기장동부교회에 출석하시다가 예수믿은 지 1년 만에 호주선교사 매견시(J. N. Mackenzie)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11년 월전교회를 설립하시다. 1914년 왕길지(G. Engel) 선교사의 천거로 월전교회 3대 조사와 기장읍교회 조사를 겸임하면서 지역민을 위한 계몽운동에도 힘쓰시다. 1918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시고 1919년 고성읍교회에 부임하시다. 1924년 제16회 경남노회에서 노회 서기가 되신 후 5년간 봉사하시고 1924년부터 1940년까지 16년간 경남성경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다. 1925년 부산 동래읍교회(수안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시고 1926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위임목사가 되시고 동시에 두구동, 산성, 금사리, 교회 당회장을 겸임하시다. 1932년 남해읍교회 목사로 부임하시고 평산, 용소, 무림, 지족 교회의 당회장을 겸임하시다가 1937년 제40회 경남노회 노회장으로 피선되시다. 1938년 일제의 강압으로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자 당시 경남노회장이던 최상림 목사님은 죽으면 죽으리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 반대를 선언하고 전국노회에서 유일하게 신사참배 반대결의를 주도하시다. 그 후 40여차례나 경찰서에 불려 문초를 당하시다가 1940년 구속되어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5년간 모진 고문을 당하시며 옥고를 치르시다가 해방 3개월전인 1945.5.6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하시다. 최상림 목사님은 평생 주님의 뜻을 받들며 정의와 겸손으로 예수 제자의 길을 걸으셨던 한국 기독교역사상 위대한 순교자이시다. 한편 대한민국은 1991년 최상림 목사님에게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과 순국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다. (남해읍교회 봉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