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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 23일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동 520번지에서 영월 엄공 엄림의 9대손 엄규영 영수의 차남으로 출생, 1935년 복음을 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친과 함께 고향 다인면 봉정동에서 예천 상락교회에 걸어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일제의 수탈로 부친과 함께 만주 봉천(現, 심양)으로 건너가 봉천에 있는 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섬기시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시다. 대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한 소명감에 불타 1949년 12월 장로회 신학교(現,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시고(제43회), 1950년 5월 목사고시에 합격, 청송 화목교회를 맡아 시무하시다가 1951년 2월 17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홀로 기도하시던 중, 갑자기 공산군 패잔병들이 화목교회와 사택을 포위하여 기관총으로 집중공격을 퍼붓고, 교회 안에서 기도하시던 엄주선 강도사를 납치해 갔다. 대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함께 납치된 신중건씨에게 주시는 사랑을 베푸셨다. 공산군 10사단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믿음을 버리면 귀가시켜준다는 회유를 받았으나 거절하시고, 오히려 전도하시다가 공산군 총검에 열아홉 군데를 찔리고 거룩한 순교의 제물로 한국 교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셨다. 부인 최동욱씨는 부군을 따라 대구장로회 신학을 마치시고 20여년간 목회하시다가 1979년 12월 21일 대전 동부교회에서 소천, 엄강도사 옆 묘소에 안장되시다.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과 온유와 겸손한 성품으로 목회를 하시다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엄주선 강도사를 존경하며 거룩한 순교신앙을 기리기 위해 이 글을 담아 순교 현장인 이곳 옥정동 바랑골에 기념비를 세우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1998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