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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함을 근본으로 생장하여 숭조사상과 애국지심이 특별하였다. 국운이 불행하여 일본이 조국을 침탈하니 광복운동에 자신을 국가에 헌신하여 부귀영화는 물론 불고가사하고 불굴의 기백으로 일제에 항거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퍼지자 때를 노칠세라 김화영 권헌이 박진해 김창락 동지들과 주동이 되어 헌신을 결심하고 다수의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여 여러 마을에 돌리고 그해 3월 17일 예안장날에 수백명의 군중이 운집한 후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하니 그 함성은 산천을 진동시키고 의기가 충천하여 예안향리가 독립정신을 크게 일캐우고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검에 잡히게 되어 안동경찰서에서 몸서리치는 고문을 받은 후 안동법원에서 태형 90도의 곤장을 맞아 사경에 이르름은 물론 자손을 둘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어 고생하다가 만주를 경유 중도에 도착하여 임정 김구 주석을 보필하며 항일투쟁하다가 8.15 광복 후에 귀국하여 유성에 우거하며 후학양성에 힘써 충청도에서 백오 선생의 발천을 하시다. 1968년 12월 3일 고종하시니 향년이 71세요 유성에 안장하다. 배는 경주이씨요 유 1녀 하여 종자재민을 양자하였으나 6.25동란에 행방불명되고 손에 인구요 서에 안성호요, 외손에 홍락 경락 범락이다. 1983년 8월 31일에 정부에서 건국공로로 대통령표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