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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항일투사 남정 하남식 공은 고려 충절신 문하시랑 동평행사 휘 공진의 후예이며 창주 선생 휘 징의 11대손으로서 1885년 을유 2월 24일 이곳 단목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맹스러웠던 공은 일찌기 판임농상공부 주사를 역임하셨으나 조국이 일제의 강앞으로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적 비극을 맞게 됨에 분연이 이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여 이후 구국항일운동에 한평생을 바치시었다. 공은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시 진주 지역 일대의우국지사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 과감히 전개하다 일제에 의하여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셨다. 그러나 공은 이에도 굴함이 없이 독립운동을 계속하는 한편 일제 한일합방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한반도로부터 즉각 철수를 촉구하는 항일각서를 당시의 조선총독부에 보내기도 하였고 일경의 감시와 미행이 집요해짐에 따라 상해임정에 합류코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부득이 변성명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그곳에서 또한 교포단체인 상애회 회장에 피선되어 그 조직을 통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아울러 민족정기를 촉진하는 운동을 부단히 전개하셨다. 그러던 중 여기서도 일경의 사찰과 감시로 부득이 일본 각지로 전전긍긍 은거 생활을 하시다가 1930년 봄에 귀국하여 유림계와 불교계 지사들과 상통 밀모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45년 8월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해방이 실현되자 감격에 겨워 조선독립만세가의 노래와 시를 지어 이를 인쇄 경향 각지에 배포하여 그 기쁨을 온 국민과 같이 하셨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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