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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金溶昊) 선생은 본관이 김녕(金寧) 초휘는 필수(弼壽), 자는 광업(光業), 호는 덕산(德山)이며 관조 김녕군(金寧君) 휘 시흥(時興)의 9세손 충의공(忠毅公) 휘 문기(文起)의 7세손 판교공(判校公) 휘 선방(善方)의 8세손 휘 두철(枓鐵)의 장자로 1843년에 지계리(枝界里:현 점말)에서 출생하였다. 선생은 그 기품이 남달리 장대하더니 절충장군 오위장(折衝將軍 五衛將)을 역임하였다. 한말(韓末)에 국운이 기울어 굴욕의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며, 우리 군대마저 해산하게 되자 선생은 퇴령임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고종 황제의 시종원 부경(侍從院 副卿)을 지낸 강두흠(姜斗欽) 등과 함께 항일(抗日) 구국운동에 나섰다. 먼저 강경한 설득으로 매국단체인 일진회(一進會) 영동지회는 해산시켰으나, 일본제국의 강압은 날로 심해져 마침내 1910년 8월 29일에는 치욕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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