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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金九鉉) 선생은,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의 함성은 높아만 갔고 의령에서도 연달아 만세운동이 일어나 이곳 상정면 덕교리(上井面 德橋里)에도 이러한 민족의 울분에 넘친 감격적인 소식은 시시각각으로 들려왔다. 드디어 그는 유지인 조균구(曺均九)·조두환(曺斗煥)·조균수(曺均壽)·김응현(金應鉉)·박용주(朴龍周) 등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대·소의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3월 20일 밤 이들 주동인물을 비롯한 약 3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동구(洞口)에 모여 큰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주동인물들의 선창에 따라 각자 가진 태극기를 높이 들어 독립만세를 외친 후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면서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면장 강재언(姜載彦)을 끌어내어 앞세우고 약 2시간에 걸쳐 이곳 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이날 주동자로서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해 6월 2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형을 언도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7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